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있을 당시 국회에서 라파엘 하르페즈 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접견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이재명 대통령이 X(옛 트위터)에서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한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 행위를 비판한 뒤 이 문제가 양국 간 외교 문제로 비화한 가운데, 우리 정부가 정작 이스라엘의 정책 및 군사 행동이 국제법에 위배될 가능성을 지적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유엔인권이사회(UNHRC) 결의안에는 기권(abstain)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통령은 이번 국면에서 “각국의 주권과 보편적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보편적 인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데, 이·팔 문제에 있어 우리의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던 외교부의 다자(多者) 외교 초식에 일대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은 지난 2024년 10월 유엔 총회에서 2025~2027년 임기의 UNHRC 이사국에 당선돼 이를 수임(受任)하고 있다. 이사회는 지난달 27일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점령지 내 인권 상황’에 관한 결의안(A/HRC/61/L.35/Rev.1)을 찬성 24, 기권 19, 반대 4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군사 작전, 입법·행정 조치 등을 지적하며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독립된 조사위원회(COI)가 책임 규명에 나서고, 모든 나라가 팔레스테인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를 공급한 나라·기업 같은 ‘제3자’에까지 추후 책임을 물을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중국, 파키스탄, 쿠바 등이 결의안에 찬성한 반면 국제 사회에서 자유·민주 진영에 속하고 한국의 유사 입장국으로 분류되는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등 19국은 기권을 했다. 한국 역시 기권을 했는데 이사회의 이·팔 문제 관련 결의안이 지나치게 일방적이고 10·7 테러를 저지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의한 인권 침해는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미국 측 문제의식을 고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다자 외교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UNHRC 탈퇴를 지시했고, 지난 1월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 등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대통령이 공언한대로 미국의 맹방인 이스라엘에 엄격한 국제법 잣대를 들이대 이게 표결에도 반영되면 이는 대미(對美) 외교에도 일정 부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 與는 트럼프 규탄 “美에도 尹같은 자 있나 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해 12월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만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한국 정부는 이·팔 양국이 분쟁 해결을 위해 독립된 국가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는데, 이번 국면을 계기로 캐나다·호주·영국 등에 이어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가 인정’ 대열에 동참할지도 관심거리다. 현재 팔레스타인 내에 상주 대사관은 없고 2005년 11월 설치된 대표사무소만 있어 비공식적인 외교·영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은 “이스라엘에 전쟁범죄 책임을 묻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 늦었지만 환영한다”며 “이제 이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그에 걸맞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그 의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등 반미(反美)·좌파 성향 시민단체들은 13일 오후 서울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스라엘의 ‘침략과 폭격’을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예고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정치권에서도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여권 인사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트럼프까지 비판하고 나섰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네타냐후는 이 대통령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고 했고,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리버럴 성향 여배우인 메릴 스트립이 트럼프를 비판한 영상을 올리며 “한국의 윤석열 같은 자가 미국에도 있나 보다”라고 했다. 박 의원은 “국제사회는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도 정면으로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데, 그래서 이재명 대통령이 ‘그래선 안 된다’고 한말씀하신 것”이라고 했다. 윤미향 전 의원은 “이재명 정부에 살고 있어 위로가 된다”며 “침략전쟁으로 세계를 통곡으로 몰아넣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성, 사죄가 문제 해결의 시작인데 미국은 지금 저들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