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조건부 휴전에 합의했지만 핵심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개방 여부를 놓고 여전히 혼선을 빚고 있다. 백악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대로 해협은 즉시 신속하고 안전하게 열려야 한다”고 했지만, 이란은 “군과의 협조 및 기술적 제약을 고려한 조건 아래서만 가능하다”며 조건부로 해협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란 국영 매체들은 해협을 다시 봉쇄해 유조선들을 회항시키고 있다고 보도했고, 기뢰를 피할 대체 항로를 제시하며 통제 강화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이란의 통행료 공동 징수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물동량의 약 5분의 1이 통과하는 핵심 항로에서 통행료가 상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 타스통신은 9일(현지 시각)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수를 하루 최대 15척으로 엄격히 제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고위 소식통은 타스에 “모든 선박의 이동은 이란 당국의 승인과 특정 프로토콜(규칙) 이행을 전제로 한 조건부”라고 했다. 이란 정부는 이런 방침을 역내 주요 국가에 공식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이 언급한 프로토콜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전날 성명을 통해 “기뢰 접촉 위험을 고려해 해협을 통과하려는 모든 선박은 혁명수비대 해군과 조율하고 대체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며 “허가 없이 통과하려는 선박은 파괴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혁명수비대는 통과가 허용된 선박들은 기존 항로 대신 이란 케슘섬과 라라크섬 사이, 이란 연안을 따라 오만만으로 빠져나가는 좁은 통로를 이용해야 한다며 새 항로를 제시했다. 이란이 선박 이동을 직접 감시·통제하기 용이한 구조다.
이란은 휴전 기간에도 해협 통과 유조선에 대해 사전 화물 신고를 의무화하고 통과 여부를 개별 판단하는 조치를 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호르무즈 해협 출구로 향하던 파나마 선적 유조선 ‘오로라’호가 오만 무산담 반도 인근에서 항로를 180도 변경해 페르시아만으로 회항했다고 한다. 이란 정부가 무기 반입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선박의 화물과 이동을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이라 통항 속도 자체도 크게 떨어진 상태다.
이란이 제시한 통행량은 전쟁 전 평균 통항량인 일일 135척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트럼프가 휴전의 전제로 내세운 호르무즈 해협의 ‘즉각적이고 안전한 개방’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통행료 징수 시스템 구축도 밀어붙이고 있는 이란은 자국산 원유·물자를 실은 선박은 무료로 통과시키되 우호국 선박에 배럴당 약 1달러 수준의 통행료를 부과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통행료는 사전 합의를 거쳐 가상 화폐나 중국 위안화로 지급해야 한다.
다만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8일 브리핑에서 “오늘 해협 통행량이 증가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해협이 봉쇄됐다는 보도를 부인했다. 트럼프도 ”모든 허위 선동에도 불구하고 호르무즈 해협은 개방되고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러면서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징수 요구와 관련해 미국과 이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합작 법인(joint venture)’ 형태의 운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는 ABC 방송 통화에서 “우리는 이를 합법적인 형식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며 “해협을 안전하게 지키고 다른 여러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통행료 징수 등에 직접 참여해 이란과 함께 수익을 가져가는 구상을 제시한 것이다.
트럼프는 앞서 트루스소셜에서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엄청난 수익이 만들어질 것이므로 이란은 이를 통해 재건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구체적 징수 방식, 배분 구조 등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직접 참여해 ‘관리비’ 성격의 수익을 확보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해석됐다. 레빗은 “대통령이 제안한 아이디어로 향후 2주간 논의를 이어갈 사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