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부터 2018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국제공화연구소(IRI)의 '얼굴' 역할을 한 고(故)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AP 뉴시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4~16일 미 공화당 계열 인사들이 이끄는 비영리단체 국제공화연구소(IRI) 초청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할 예정이다. 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에 이뤄지는 이번 방미(訪美)를 두고 그 적절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 단순히 장 대표의 미국 방문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IRI에 ‘부정선거 연구기관’이란 낙인을 찍고 있는데, 봇물을 이루는 라디오·유튜브 정치 평론 프로에서 이런 식의 아전인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1983년 설립돼 미국식 민주주의·선거 시스템 전파에 첨병 역할을 이 기관의 역사는 그것보다는 무겁다.

SBS 라디오 진행자인 김태현 변호사가 9일 자신의 방송에서 이번 방미와 관련해 “공공 외교, 민간 외교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묻자 윤희석 국민의힘 전 선임대변인은 “지지층에 소구하기 위해 자기 선거를 하는 것”이라며 “연구소가 뭐 하는 곳인지를 봐야 한다. 여러 목적이 있는데 부정선거 연구하는 그런 단체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미국에 다녀왔는데 ‘우리 선거에 이런 문제가 있다’고 얘기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전한길씨가 다시 입당할라나”라고 했다. MBC 유튜브에서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패널로 나와 “친(親)공화당 성향의 국제공화연구소라고 하는데 전 세계 부정선거에 대해 감시하는, 그런 것도 주장하는 단체라고 그런다” “가서 ‘윤 어게인’ ‘부정선거’ 이런 얘기를 해서 국익에 저해되는 언행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 9일 방송된 한 라디오 방송의 유튜브 썸네일. 국제공화연구소(IRI)가 '부정선거 연구단체'라는 식으로 표현돼 있다. /유튜브

장 대표가 IRI 초청 연설에서 ‘부정선거’를 언급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IRI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1982년 ‘웨스트민스터 연설’을 통해 소련에 맞선 민주주의 확산 구상을 제시한 이듬해 세계 민주주의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설립됐다. 공식적으로는 비당파 비영리단체(NGO)이지만 공화당 계열 인사들이 주로 이사장을 맡아 미 조야(朝野)에서는 사실상의 공화당 계열 싱크탱크로 여겨진다. 1993~2018년 이사장을 지낸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대표적인데, 미 정치권을 대표하는 신사였던 그가 IRI의 얼굴 역할을 하면서 ‘글로벌 민주주의 지원 기관’으로 브랜드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랍의 봄’ 이후 주요국의 정치 전환 과정을 자문하고, 우크라이나·조지아에서 선거 및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수단이란 비판이 병존하지만, 이런 이유로 IRI는 전미민주주의기금(NED)·국제개발처(USAID) 등과 더불어 미국의 ‘소프트 파워’ 외교를 주도하는 기관으로 인식됐다.

현재도 IRI 면면을 보면 알래스카주(州)가 지역구인 댄 설리번, 상원 정보위원장인 톰 코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같은 공화당 주류가 이사진을 구성하고 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전 상원의원, 트럼프 1기 때 대통령의 폭주를 제어하는 ‘어른’ 역할을 하다 물러난 허버트 R.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트럼프 1기의 대(對)중국 정책 설계에 관여했던 매튜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 같이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아닌 인사들도 망라하고 있다. IRI가 개도국 선거에 참관단을 파견해 선거 과정의 공정성을 평가해 왔지만 이는 민주주의 선거·정치 시스템 지원을 위한 목적으로 국내 일각의 ‘부정선거’ 주장과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시민사회·NGO 육성, 여성·청년 정치 참여 확대, 정부 투명성·책임성 강화 등도 IRI가 추구하는 주요 사업 어젠다다. 과거 IRI에서 근무한 한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의 연구원은 “개도국이나 후진국의 선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데 초점이 있는 IRI를 단순히 ‘부정선거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건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修辭)”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