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 시각) 대표적 ‘충성파’로 꼽히는 팸 본디 법무장관을 경질했다. 트럼프의 정적(政敵)에 대한 수사·기소를 주도하고, 트럼프가 미성년자 성 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 친분이 있었다는 의혹을 다루는 과정에서 트럼프와 지지자들의 불만이 누적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후임으로는 리 젤딘 환경보호청장과 마이크 리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가 집권 2기 들어 장관을 경질한 것은 지난달 크리스티 놈 전 국토안보부 장관 해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트럼프는 추가 인적 쇄신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본디, 엡스타인 사건 키웠다”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을 거쳐 폭스뉴스 패널로 활동한 본디는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의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사법 보복’을 주도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더딘 진행에 불만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애덤 시프 민주당 상원의원 등에 대한 수사가 절차적 하자 등으로 번번이 법원에서 가로막히자 불만이 더 커졌다고 한다.
특히 엡스타인 의혹과 관련된 트럼프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불만이 상당했다. 본디가 사건을 키워 대통령에게 부담을 줬다는 것이다. 본디는 지난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엡스타인의 ‘고객 명단’에 관한 문답을 하다가 “지금 검토를 위해 내 책상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발언이 ‘실체가 없는 고객 명단이 정말로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는 불만이 공화당 내에서 속출했고, 엡스타인과 기득권 정치인들의 유착 의혹을 제기해 온 매가 진영에서도 트럼프가 대선 공약과 달리 사건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회 결정에 따라 법무부가 엡스타인 사건 관련 문건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신상 노출을 비롯한 잡음이 끊이지 않으면서 본디는 보수 진영에서도 신임을 잃었다. 현재 반(反)트럼프 진영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엡스타인 의혹에 쏠린 이목을 돌리기 위해 이란 전쟁을 벌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 문책성 인사 잇따를 전망
트럼프 2기는 민간 메신저에서 군사 작전을 논의한 ‘시그널 게이트’로 물러난 마이크 왈츠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제외하면 최근까지 별다른 인사 관련 잡음이 없었다. ‘정치 신인’이었던 트럼프가 1기 첫해에 국가안보보좌관을 시작으로 백악관 비서실장, 국무장관, 수석 전략가, FBI 국장 등 핵심 참모들을 줄줄이 경질하며 좌충우돌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향후 문책성 인사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잡지 디애틀랜틱은 “집권 2기 들어 트럼프는 고위직 경질을 민주당이나 언론에 대한 굴복으로 여겨 자제해 왔지만, 이란 전쟁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2일 공개된 CNN 여론 조사에선 이란 전쟁을 지지한다는 의견이 개전 초기에 비해 7%포인트 하락한 34%로 나타났다.
디애틀랜틱·폴리티코 등 미 언론에 따르면 교체 대상 인사로 캐시 파텔 FBI 국장, 로라 차베스디리머 노동장관 등이 거론된다. 파텔은 사적 여행에 정부 전용기를 사용하고, 보안 규정을 위반해 개인 이메일이 대량 해킹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차베스디리머는 근무 중 음주, 부하 직원과의 불륜 의혹으로 감찰관실의 조사를 받고 있다. 아들이 근무하는 회사가 정부와의 관계를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도 거명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은 트럼프가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 교체를 내각 인사들과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18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개버드는 지난달 상원 청문회에서 “이란의 핵 농축 능력이 지난해 공습으로 파괴됐고, 재건 노력은 없었다”고 밝혀 “이란의 임박한 위협 때문에 전쟁을 시작했다”는 트럼프와 엇박자를 냈다. 트럼프는 최근 취재진에게 “나는 그(개버드)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면서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한편 군에서는 이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요구에 따라 랜디 조지 육군참모총장이 면직됐다. 헤그세스가 사임을 요구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육군이 친(親)트럼프 가수 키드 록 자택에 근접 비행한 헬기 조종사들을 직무정지하고 조사한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사건 직후 헤그세스는 조종사들에 대한 직무정지를 해제하고 “조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됐다. 대니얼 드리스콜 육군장관 역시 인사 관련 갈등 등으로 경질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