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 오전(현지 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의 새 정권 대통령(New Regime President)이 방금 미국에 휴전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자유롭게 개방되고 위험이 제거된 시점에 이를 검토하겠다”며 “그때까지 이란을 완전히 박살내거나, 흔히 말하는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했다. 이란 전쟁의 종전(終戰) 가능성을 언급하는 동시에 군사적 압박을 유지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이번 전쟁으로 ‘이란 정권 교체’와 ‘핵 무력화’라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가 언급한 ‘새 정권 대통령’은 마수드 페제시키안 현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제3의 인물을 염두에 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트럼프의 주장과는 달리 이란 측은 ‘미국에 휴전을 요청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이 휴전을 요청했다는 발언은 거짓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밝혔다고 이란 국영 TV가 보도했다.
이란 전쟁이 한 달을 넘기면서 미국 측에서 종전을 시사하는 언급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제와 에너지 시장이 흔들리고 미국 내 여론도 악화하면서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승리’를 선언하고 호르무즈 해협 문제 등에서 발을 빼는 출구 전략을 본격적으로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트럼프가 1일 오후 9시(한국 시각 2일 오전 10시)에 이란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한다고 예고했는데, 이 자리에서 종전 구상을 밝힐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는 지난달 31일엔 취재진에게 “우리는 (이란에서) 아주 곧 떠날 것”이라고 했다. 군사작전 종료 시점으로 “2∼3주 이내”라는 구체적 시한도 거론했다. 앞서 백악관은 군사 목표가 달성됐다고 판단하면 이란의 명시적 항복 선언 여부에 관계없이 작전을 종료할 수 있다고 했었다.
트럼프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 “우리는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했다. 역시 출구를 만들기 위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는 “프랑스 등 다른 나라가 석유, 가스를 원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직접 그곳에 가면 된다”며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해협 안전 확보가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루비오도 “전쟁 결승선 보인다”… 美 ‘셀프 승리·종전’ 선언하나
며칠 전까지 강경 메시지를 발신하던 트럼프가 ‘종전’을 시사하고 나온 주요 원인 중 하나로는 유가 상승과 이로 인한 여론 악화가 꼽힌다. 지난달 31일 미국의 평균 휘발유 가격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시장이 요동친 2022년 8월 이후 역대 최고인 갤런당 4달러(약 6100원)를 기록했다. “기름값이 4달러가 넘으면 선거에서 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 유권자들은 휘발유 가격에 극도로 민감한데, 이는 집권 후 휘발유 가격 안정을 최대 성과로 내세웠던 트럼프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의 “아주 곧 떠날 것” 발언도 취재진의 유가 대책 관련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정권의 명운이 걸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정 수행 지지도도 재집권 후 최저점을 찍은 상황이다. 전날 발표된 매사추세츠대 앰허스트 캠퍼스의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국정 수행 지지도는 33%로, 1년 전보다 11%포인트 떨어졌다. 이란 전쟁을 지지하는 응답자는 29%에 불과했다.
백악관은 앞서 이번 작전의 기간을 약 4~6주, 목표로 이란 군사 무력화 및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저지 등을 제시했다. 트럼프는 전쟁 상황임에도 미국이 안전하고, 이란 내에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사후 차남 모즈타바가 후계를 잇는 식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들(이란)은 나와 합의할 필요가 없다”며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장기간 석기시대로 접어들고 핵무기를 가질 수 없게 되면 우리는 떠날 것”이라고 했다.
이란 정권의 완전한 파괴를 주장하던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핵 프로그램 타격, 탄도미사일 파괴, 정권 기반 무력화 등을 성과로 제시하며 조기 종전에 대비한 명분을 쌓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결승선이 보인다”며 “오늘, 내일은 아니지만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한 만큼, 상황에 따라 이란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앞서 이란과의 협상 시한을 4월 6일로 설정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발전소, 담수화 시설 등을 폭격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향후 며칠이 결정적”이라며 이란이 합의하지 않을 경우 더 강도 높은 타격이 이뤄질 것이라 했다. 지상군 투입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투입할 수도 있고,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지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양국은 종전을 둘러싼 엇갈린 전망 속에서도 무력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미군은 작전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댄 케인 합참의장은 지난 30일 동안 1만1000개가 넘는 목표물을 타격했다며 “공중 전력의 우세가 증가해 처음으로 B-52 전략폭격기를 활용한 육상 경로 타격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조지 H W 부시 항모 전단도 버지니아주(州) 노퍽 해군 기지에서 중동으로 출항했다. 이미 중동에 전개된 에이브러햄 링컨·제럴드 포드 항모를 포함해 항모 3척이 특정 지역에 동시 전개되는 것은 전면전에서나 볼 수 있는 예외적인 일이다. 이미 본토와 일본에서 증파된 해병원정대 5000여 명을 비롯해 육군 정예 82공수사단 소속 수천 명도 도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이란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압박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