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헬버그 미 국무부 차관이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제이콥 헬버그 미 국무부 경제 성장·에너지 담당 차관은 30일 “서방이 중국과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중요한 파트너가 되어야 할 유럽이 규제 대신 성장과 혁신을 선택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을 경우 유럽이 중국 앞에서 경제·군사적으로 ‘무장 해제’돼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고위 인사들은 자국 빅테크를 겨냥한 외국 정부의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는데,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에 대해 “안전 장치라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했다.

유럽을 방문 중인 헬버그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앤디 푸즈더 EU 주재 미국 대사와 공동으로 기고한 글에서 “AI 붐을 기다리기만 하는 경제는 그 기회를 놓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AI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서방은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헬버그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 미국이 공급망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협의체인 ‘팍스 실리카(Pax Silica)’를 창설해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일본 등 12국이 참여하고 있고, 최근에는 소프트뱅크·테마섹 같은 글로벌 기관 투자자와 함께 최대 1조 달러를 AI 인프라 등에 투자하는 ‘팍스 실리카’ 펀드도 출범했다. 1989년생인 헬버그는 팰런티어 출신으로 입법·규제 권력을 가진 워싱턴 DC와 첨단 기술에 밝은 실리콘밸리 간 가교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헬버그는 “유럽의 정책적 실책은 서방의 기회를 위협할 뿐 아니라 유럽의 미래 안보, 경제 성장까지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중요한 파트너가 될 인재, 기업, 자본 등을 갖추고 있는 유럽 당국은 에너지, AI 등에서 정체와 억압 대신 성장과 혁신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AI 시대에는 그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하는 일도 중요한데, 헬버그는 “EU는 에너지 전환이 아닌 에너지 확충을 수용해야 한다”며 “화석 연료 비용을 증가시키고 사용을 제한하는 정책들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는 EU가 국제 사회에서 주도한 각종 ‘탈(脫)탄소’ 정책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헬버그는 “EU가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경우 미국은 유럽을 뒤로 남겨둘 수 있다”며 “이는 미국과 유럽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될 것이다. 우리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EU가 미국의 파트너로서 국무부가 주도하는 팍스 실리카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헬버그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는 “AI는 새로운 산업혁명이고 첫 번째 산업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산업화하는 나라는 번영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유럽은 지금 당장 풍부한 저비용 에너지를 개발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AI 경쟁에 필요한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팍스 실리카’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