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혁명으로 1979년 축출된 이란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세자인 레자 팔레비는 28일 텍사스주(州) 그레이프바인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마지막 날 무대에 올라 이란의 자유가 “손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며 “자유 이란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대(對)이란 군사 작전을 놓고 그를 추종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 내 분열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현장에는 댈러스·휴스턴 일대의 이란계 미국인들이 대거 몰려와 “미가(MIGA·이란을 다시 위대하게)”란 구호를 외쳤다. 이란 국기를 몸에 두른 이란계 미국인들 중에선 상당수가 팔레비 연설에 눈물을 흘렸다.
팔레비는 일찌감치 올해 CPAC의 연사로 확정됐지만, 이란 상황과 맞물려 주최 측에서 경호 등의 이유로 그의 연설 시간을 마지막 날까지 알리지 않았다. 보수 진영의 ‘정치 수퍼볼’이라 불리는 CPAC 개막 첫날부터 행사장 입구에는 대이란 군사 작전을 지지하는 집회가 열려 “이란에게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성조기, 이란 국기, 이스라엘 국기 등이 함께 나부꼈는데 주최 측 관계자가 “미국 행사인데 이란 국기, 이란 사람이 제일 많은 것 같다”고 농담할 정도였다. 팔레비는 이날 연설에서 “무너져가는 이 정권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말라” “이란 국민이 이 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며 미국의 군사 작전을 지지했다.
팔레비는 이란의 신정(神政) 정권이 무너질 경우 과도 정부를 이끌 유력한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다만 팔레비의 이런 희망과 달리 트럼프는 이에 대해 명확히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팔레비는 “수백만 명의 이란인들이 나에게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이끌어 달라고 요청했다”며 “내 자신이 아니라 내 조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이란 정권이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탄압을 진행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며 “위대한 문명은 가장 잔혹한 점령조차 견뎌낸다. 이란 최고의 청년들이 보여주는 용기, 희생 덕분에 가장 훌륭하고 새로운 장이 바로 지금 쓰이고 있다”고 했다.
팔레비는 “이 일이 끝나면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란이 파트너이자 동맹, 친구로서 미국과 나란히 서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는 미국을, 나는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팔레비는 지난 1월 이란 신정 체제를 비판하며 “이란이 중동의 한국이 됐어야 했는데 북한이 됐다”고 말해 국내에서 적잖은 화제가 됐다. 휴스턴에서 새벽부터 차를 타고 달려왔다는 생물학자인 라단씨는 이날 행사장에서 기자와 만나 “팔레비의 연설은 이국 땅에서 고향의 가족, 친구들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줬다”며 “이란은 한 때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중동의 맹주였다. 군사 작전이 잘 마무리 돼 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했다.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미국보수연합(ACU)이 1974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연례 행사로 보수 진영의 ‘정치 수퍼볼’로 불린다. 전국에서 모인 유력 정치인, 학계·시민 사회 인사 등이 정책과 선거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다. 보수 결집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한 뒤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의 거점으로 기능하며 공화당의 정체성을 재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