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힐 앤 밸리 포럼'의 설립자인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차관(가운데), 델리안 아스피루호프 바르다 스페이스 창업자(왼쪽), 크리스천 개럿 137벤처스 대표가 2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행사에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더 힐 앤 밸리 포럼(The Hill and Valley Forum)’에는 정·재계와 테크 업계 인사 약 1500명이 모여 인공지능(AI) 시대에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 포럼은 팰런티어 고문 출신인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경제 성장·에너지 담당 차관이 설립했는데, 입법·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워싱턴 DC의 행정부·의회(Capitol Hill)와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 간 가교 역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트럼프 정부에는 테크 업계 출신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배치돼 상당한 정책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킨 헬버그는 “기술, 경제, 지정학 등 어느 분야에서든 정부나 테크 업계 단독으로 풀 수 있는 과제는 없다”며 “진정한 파트너십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했다. 이날 행사에선 특히 “미국의 문제를 직시하고, 중국이 적대국이 될 경우 맞설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월스트리트의 황제’라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마이크 갤러거 전 연방 하원의원과의 대담에서 “우리를 뒤처지게 만드는 예산 편성, 경직된 조달 방식 같은 정책 때문에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비용이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희토류, 의약품 원료, 첨단 군사 장비 부품 등을 중국에 의존했던 엄청난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중국은 지난 20년 동안 자급자족을 준비해 왔다. 만약 중국이 적대국이 된다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자체적으로 갖출 수 있을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했다. JP모건은 지난해 미국의 전략 기술 자립과 공급망 회복을 위해 항공 우주, AI, 양자컴퓨터 같은 국가 안보 프로젝트에 1조5000억 달러(약 2250조원)을 투자하는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다이먼은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은 최고의 군사력을 갖추기 위해 막대한 돈을 투입하고 있다”며 “모든 일은 나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정해야 한다”고 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가 2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더 힐 앤 밸리 포럼'에 참석해 대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류영웨이 폭스콘 회장(오른쪽)이 2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더 힐 앤 밸리 포럼'에 참석해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차관과 대담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최근 가장 주목받는 방산 기업인 안두릴의 공동 창업자인 트레이 스티븐스는 “우리의 적(敵)들은 중국, 러시아에서 첨단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며 “‘자유의 무기고(Arsenal of Freedom)’를 되살리지 못하고 망가진 관료제가 이 나라를 통치한다면 미국의 다음 챕터는 (중국 기술혁신도시) 선전(深圳)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정부 주도로 우주, 원자력, 인터넷 등 여러 분야에서 혁신을 이룩한 역사를 나열하며 “기술이 나오면 이걸 어떻게 규제할지 묻지 말고, 이걸 어떻게 활용해야 이 나라가 번영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법과 정책을 만드는 일을 하지 않자 테크 업계가 마치 철학왕처럼 나서서 최적의 정책이 무엇인지 결정하려 들고 나섰다”며 “하지만 이 문제는 미 국민과 정부의 선출된 대표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원에서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공화당 소속 존 물레나르 의원은 “냉전 시절 우리는 소련에 그다지 의존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중국으로부터 핵심 광물의 상당량을 수입하는 등 경쟁 상대에 큰 의존을 하고 있다”며 “자유 무역의 원칙을 너무나 많이 위반하는 중국이 계속해서 우리를 이길 수 있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가 최근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인 H200의 수출을 허가한 것과 관련, “중국이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는 점을 민간 부문에서도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짐 뱅크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중국이 첨단 인공지능 반도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의회가 더 엄격한 수출 통제 조치를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원들은 이날 테크 업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 “의회에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의원이 몇 명 되지 않는다”며 “무엇이 필요한지 업계에서 언제든 우리에게 입력을 하고 압력도 넣어달라”고 당부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연설에서 “미국이 AI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통제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테크 업계는 애국심을 가진 파트너로 앞장서야 한다”며 “의회는 미국산 AI가 미래의 최고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그렇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더 힐 앤 밸리 포럼'에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차관(왼쪽),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국장(가운데),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인공지능(AI)·가상화폐 차르가 무대에 올라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더 힐 앤 밸리 포럼'에서 (왼쪽부터) 크리스천 개럿 137벤처스 대표, 브래드 라이트캡 오픈AI 최고운영책임자(COO), 조시 고트하이머 민주당 하원의원, 존 물레나르 공화당 하원의원이 패널 토론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이를 위한 미국과 동맹 간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도 강조됐는데, 포럼 창립자 중 한 명이자 스페이스X 등에 투자한 벤처캐피털리스트(VC)인 크리스천 개럿 137벤처스 대표는 “켈빈 쿨리지 전 대통령은 동맹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비즈니스라 말한 적이 있다”며 “유럽, 호주, 일본, 한국 등과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일이 돌아가는 핵심적인 방식 중 하나”라고 했다. 샤오메이친(蕭美琴) 대만 부총통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대만 테크 기업들이 미국의 AI, 에너지 및 반도체 인프라에 250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부각했다.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위탁 생산 업체인 폭스콘의 류영웨이(劉揚偉) 회장도 대담에서 미국 내 생산 시설, 인력 채용 확대 계획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