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48시간 이내에 개방하지 않을 경우 발전소 등을 “초토화할 것”이라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이란과 “거의 모든 쟁점에 합의했다”며 종전(終戰) 가능성을 부각한 가운데, 미국과 이란 간 협상의 실체를 놓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가 지목한 이란 측 카운터파트가 이를 “가짜 뉴스”라 일축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증파된 병력이 집결할 때까지 연막 작전을 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는데, 계속 바뀌는 트럼프의 태세에 이란 상황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는 23일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미국과 이란이 지난 이틀간 “아주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며 이란 발전소, 에너지 시설 등에 대한 공격을 5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는 스티븐 위트코프 중동 특사, 자신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등이 전날까지 이란 최고위급 인사와 협상을 진행했다며 15개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특히 최대 쟁점인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과 관련해 “그들은 핵무기를 갖지 않을 것”이라 했고, 이란이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고농축 우라늄은 “합의가 타결되면 직접 가서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런 발언이 알려진 직후 이란은 양국이 대화를 하고 있다는 발표를 부인했다. 이란 외무부는 “미 대통령의 발언은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자신의 군사 계획을 위한 시간을 벌려는 시도”라고 했고, 에스마일 바가이 외무부 대변인은 “이번 분쟁 기간 미국과 어떤 협상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트럼프가 대화 창구로 지목한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은 X(옛 트위터)에서 이를 ‘가짜 뉴스’로 규정하며 “미국과 어떤 협상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란은 침략자들이 후회하게 만드는 완전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란 정부는 명시적으로는 전쟁 재발 방지 보장, 중동 내 미군 기지 폐쇄, 피해에 대한 배상금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협상의 실체와 실현 가능성을 놓고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마련한 것으로 알려진 5년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우라늄 농축 금지 같은 사안은 이란 입장에서 쉽게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트럼프가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은 24일 오전까지였는데, 호르무즈 해협이 당장 개방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트럼프가 일단 5일의 시간을 벌고 출구를 모색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계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란 상황에 따라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에 대한 보수 진영 내 정치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고, 트럼프를 추종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의 반발도 상당한 상황이다. 이날 트럼프가 협상을 확인하고 공격 보류를 선언하자 유가가 급락했고, 뉴욕 증시는 상승 마감했다.
다만 트럼프가 그간 이란과의 협상 중 군사 공격을 감행한 전례가 있기 떄문에 ‘결정적 한 방’이 있기 전 특유의 연막 작전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주일미군에서 31해병원정대가 중동으로 이동하고 있고, 본토 캘리포니아주(州)에서도 해병원정대가 추가로 차출됐는데 증파된 병력이 결집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증파된) 해병대 병력 수천명이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시한으로 설정한 금요일(27일)에 중동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중동 지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비롯해 약 5만명의 미군 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이란 내 타깃에 대한 군사적 작전은 계속되고 있다고 중부사령부(CENTCOM)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