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콥 헬버그 미 국무부 경제 성장·에너지 담당 차관은 23일 핵심 광물, 반도체, 인공지능(AI) 공급망 구축과 관련해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마중물 투자를 하는 2억5000만 달러(약 3700억원) 규모 ‘팍스 실리카 펀드(Pax Silica Fund)’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팍스 실리카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 동맹 간 기술 생태계를 구축해 AI·반도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헬버그가 주도해 출범했고 한국·일본 등 12국이 가입해 있다. 공급망 구축 범위는 핵심 광물, 에너지, 첨단 제조, 반도체, AI 인프라, 물류 등을 망라한다. 국무부가 구성하는 ‘팍스 실리카 투자자 컨소시엄’에는 일본 소프트뱅크, 싱가포르 테마섹 같은 굴지의 글로벌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해 구체적인 프로젝트에 대해 자본을 투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헬버그는 이날 오전 워싱턴 DC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펀드 설립 계획을 밝히며 “동맹국의 산업 투자에 대한 미 정부의 가장 중요한 직접 지원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전 세계 파트너들이 공동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실질적인 자본을 투입하도록 하는 신뢰 기반이자 행동 촉구 신호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대(對)이란 군사 작전 이후 이란이 세계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언급하며 “우리는 세계 경제의 단일 병목 지점이 최근까지도 핵무기 개발을 고수한 극도로 비이성적인 정권에 의해 무기화될 수 있다는 점을 목격하고 있다”며 “그런 계산이 기술 및 반도체 공급망으로까지 파급되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팍스 실리카의 철학은 이런 위험 지점을 제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헬버그는 펀드의 성격에 대해 “국무부가 장기 투자를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관 투자자들과 긴밀히 협력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발적인 컨소시엄으로 이 체계를 활용해 프로젝트를 선별·심사해 협력 기회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자금을 직접 관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자리에 모여 검토할 프로젝트 목록을 이미 마련해 뒀다”며 “해당 프로젝트 투자에 대한 공동 투자 결정을 논의할 뿐 아니라 아직 초기 단계인 다른 잠재적 협력 기회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1989년생으로 팰런티어 고문을 지내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테크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헬버그는 실질적인 관리는 국무부가 하고 있다면서도 “모든 것을 느리게 만드는 정형화된 서류 작업이나 관료주의, 절차들을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한국·일본 등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교역국은 지난해 트럼프 정부와 상호 관세 인하 반대급부로 합의를 맺으면서 상당한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했다. 헬버그는 이와 관련해 “현재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를 통해 추진되는 것은 수년,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는 ‘에버그린(evergreen)’ 협정”이라며 “이 컨소시엄은 매우 구체적이고 목표가 명확한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해 공동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메커니즘으로 설계됐다. 마치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차이 같이 훨씬 더 목적 지향적”이라고 했다. 헬버그는 지난 16일 신세계가 미 AI 기업인 리플렉션AI와 함께 국내 최대 규모의 데이터 센터를 짓기로 한 것에 대해 “이게 바로 동맹 기반 AI 주권의 모습”이라 했는데, 이번 펀드가 AI 패권과 공급망 구축을 위한 미국과 동맹 간 여러 프로젝트에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