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 백악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약 5개월 만이고, 다카이치는 취임 후 첫 미국 방문이다. 트럼프가 직접 마중을 나왔는데, 차에서 내린 다카이치가 트럼프 품에 와락 안긴 뒤 팔을 만지면서 안부를 물었다. 다카이치는 트럼프를 ‘도널드(Donald)’라고 부르며 “당신만이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다카이치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과 관련해 “그녀는 매우 인기 있고 강력한 여성이다” “일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선거를 치렀다”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화답했다.
이날 회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노란색 넥타이를 맨 트럼프가 특유의 유머 섞인 발언을 이어갔는데, 다카이치가 통역(영어→일본어)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손짓을 하자 “내 말을 알아들었다니 정말 좋다”며 “나는 아직 당신의 언어를 배우지 못했지만, 다음번에 올 때는 당신의 언어(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다카이치는 모두 발언을 영어로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통역을 통했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 이란 상황과 관련해 “이란의 핵 개발은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나라는 주변국에 대한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에 대해서도 비난해 왔다”고 했다.
트럼프는 다카이치 왼편에 앉은 일본 측 통역 담당인 다카오 스나오(高尾直) 외무성 실장을 가리켜 “(아베) 신조 때부터 알던 사이”라며 “아주 훌륭한 통역을 뒀다”고 칭찬했다. 미국 출생으로 원어민급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다카오는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영어 통역 출신으로, ‘브로맨스(bromance·남자들 간의 특별한 우정을 일컫는 말)’를 과시했던 트럼프와 아베가 만날 때마다 그 자리에 있었다. 트럼프가 “작은 총리 같다” “이렇게 유능한 외교관이 있는지 몰랐다”고 호평했을 정도로 친숙한 편인데, 중요한 순간마다 일본 외교의 ‘구원 투수’로 호명돼 등판을 하고 있다. 미국 측에선 J D 밴스 부통령,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이 배석했다.
회담 중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는데 한 일본 기자가 대(對)이란 군사 작전과 관련해 ‘왜 일본 같은 동맹에 미리 알리지 않았냐’고 묻자 “기습을 원했기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기습에 대해 일본보다 더 잘 아는 곳이 어디 있겠냐? 진주만 공격 때 왜 나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받아쳤다. 진주만 공습은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미국인이 2400명 이상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트럼프는 “당신들은 우리보다 기습의 가치를 더 잘 믿지 않냐”며 “기습 덕분에 첫 이틀 동안 예상보다 훨씬 많은 50% 이상의 전력을 무력화했다. 모두에게 말하면 더 이상 기습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다카이치는 이날 파란색 정장을 입었는데 납북된 일본인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파란 리본 배지를 달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일본은 미국과의 양자(兩者) 회담이 있을 때마다 납북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테이블 위에 올리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다카이치와 트럼프가 도쿄 영빈관에서 납북 피해자 가족과 면담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