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서 러시아의 드론 공격을 받아 화재가 발생한 민간인 가옥에서 한 소방관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 외교·군사 역량을 집중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사실상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연기된 협상을 재개할 시점조차 불투명한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15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로이터 등에 따르면 미국이 중재해 온 러시아·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최근 사실상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협상에 관여한 유럽연합(EU) 외교관들은 미국의 외교적 관심이 이란으로 이동하면서 “협상이 위험 구간(danger zone)에 들어섰다”며 “우리와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 열렸던 지난달 17~18일 스위스 제네바 협상 이후 일정이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지난 5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후속 협상은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일정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다음 주 미국에서 회담을 여는 방안을 미국이 제안했지만 러시아가 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U 외교관들은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가 ‘숨 쉴 공간’을 얻었다고 보고 있다. 경제 제재로 심각한 재정적 압박을 받고 있던 러시아는 전쟁 이후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석유 수출로 버는 돈이 크게 늘었다. FT는 유가 상승으로 러시아가 하루 최대 1억5000만달러(약 2241억원)의 추가 수입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유가 상승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란 전쟁과 관련해 미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미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해 향후 협상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난 14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서 러시아의 공습으로 다친 주민에게 구급대원들이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반면 우크라이나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동의 군사 수요를 우선시하면서 방공 체계 등 일부 장비 공급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중동과 우크라이나가 동일한 군사 자산을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미국의 관심은 분명 중동에 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는 매일 밤 러시아 드론을 격추하고 있고, 이를 위해 상당한 방공 자산이 필요하다”면서 “중동 문제 때문에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물러나는 상황은 정말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그간 축적한 드론 방어 역량을 미국 등과 공유하며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의 미군 기지 등에 전문가 팀을 보내 이란의 ‘샤헤드’ 자폭 드론에 대응하는 방어 체계에 대해 조언했다. 다만 젤렌스키는 “이는 기술 자문 차원”이라며 “우리는 이란과 전쟁 중인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