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시작된 미군의 대(對)이란 군사 작전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최대 승부처로 부상한 가운데,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5국을 콕 집어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한 것은 이번 작전에 동맹을 중심으로 한 다른 우방을 참전시키는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개전 이후 트럼프가 이스라엘이 아닌 제3국에 작전 동참을 명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중국을 제외하면 이날 언급된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모두 트럼프가 그간 ‘충분한 안보 부담을 하고 있지 않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던 나라들이다. 한국은 2020년 초 미군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을 사살해 긴장이 고조됐을 때 아라비아반도 예맨과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사이 아덴만에서 활동하던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장하는 식으로 요구에 응한 바 있다.
트럼프는 이날 오전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서 “여러 국가, 특히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시도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 해협을 개방되고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군함을 보낼 것”이라고 했다. 오후에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는 세계 각국은 통로를 관리해야 하며, 우리도 그들을 아주 많이 도울 것”이라며 다른 나라들의 참여를 재차 독려했다. 전날 김민석 국무총리와 면담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트럼프를 비롯한 미 정부 관계자들이 이란 문제에 대한 지원 요청은 따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가 ‘보낼 것(will be sending)’이란 단정적인 표현까지 사용해 가며 한국을 호명하면서, 미군이 호르무즈 해협 선박 호위 작전에 착수할 경우 청구서를 받아 들 가능성이 커졌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지난해 1분기 자료를 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유통되는 원유 물동량은 중국(37.7%), 인도(14.7%), 한국(12%), 일본(10.9%) 순이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원유 3분의 2 이상이 이 해협을 통과한다.
트럼프는 취임 후 우방에 방위비 증액을 압박했고, 지난해 11월 한미는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 정부가 국방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5%로 증액하는 데 합의했다. 한국의 방위 부담 확대, 주한미군의 역할과 책임 재조정 등을 골자로 하는 한미 간 ‘동맹 현대화’ 협의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트럼프가 평소와 달리 돈이 아닌 실제 전력 투입을 요구한 것이라 차원이 다르다. 중동 전쟁에 직접 관여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도 있고, 국회 승인 여부 등을 놓고 국내 정치적 논란도 수반될 수 있어 우리 정부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됐던 지난 2020년 아덴만에 파병된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까지 작전 영역을 넓혀 한국 선박을 호위하는 독자적 작전을 수행한 전례가 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 공동방위를 위해 주도하던 협의체인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적으로 파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동맹인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면서도 이란에 ‘적국(敵國)’으로 간주되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앞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미 해군이나 ‘국제 연합군’이 유조선 호위를 할 가능성은 항상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했다. 또 G7(7국)은 성명을 통해 “해당 지역 항행(航行)의 자유 회복을 준비하기 위한 협조 체제 구축에 합의했다”며 “안보 상황이 허용할 경우 선박 호위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 시작됐다”고도 했다. 다만 아직 미군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유조선 호위에 나서는 움직임은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복수의 당국자를 인용해 미 국방부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유조선 호위 준비의 하나로 군함을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란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어 호위가 시작되기까지 최대 한 달이 걸릴 수 있다고 WSJ는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