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북한 헌법에 명기된 ‘핵 보유국’ 지위 인정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내걸며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백악관 관계자는 26일 본지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김정은과 세 차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를 안정시켰다”며 “대통령은 여전히 어떤 전제 조건 없이(without any preconditions)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 of DPRK)를 추구한다’는 기존 입장과 관련해 “미국의 대북 정책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김정은은 노동당 9차 대화 사업총화보고에서 한국에 대해서는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 “한국의 현 정권이 표방하는 유화적 태도는 서투르고 기만적인 졸작”이라 밝힌 반면 미국을 향해서는 “북한 헌법에 명기된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기존의 ‘통미봉남(通美封南)’보다 더한 ‘통미적남(通美敵南)’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됐다. 백악관은 이에 대해 대화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북한 핵·미사일 문제 등과 관련해서는 “대북 정책은 변함이 없다”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트럼프는 재집권 이후 여러 차례 김정은과의 친분을 과시했고,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을 의미하는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 지칭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최근 카리콤(CARICOM·카리브공동체) 정상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이란, 미래 북한의 어느 정부 관계자와도 만나 대화하고 입장을 경청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의 3월 방중(訪中)을 계기로 김정은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있지만, 현재 미·북 간 사전 접촉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1기 때 싱가포르, 베트남 하노이, 판문점 등에서 세 차례 만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