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예비 후보인 양기대 전 의원(오른쪽)과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 /양기대 전 의원 캠프

세계적인 투자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짐 로저스(84)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24일 본지에 “나는 한국 선거에서 누구도 지지하지 않으며 지지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일부 후보가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을 특히 강조해 온 로저스의 이름을 앞세운 선거 캠페인에 나선 가운데, 이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표명했냐는 본지 질의에 “나는 누구를 지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힌 것이다. 지난해 대선에서도 선거 막판 로저스가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는지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는데,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이 투자자의 이름이 1년도 안 돼 선거판에 다시 등장했다.

광명시장 출신으로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등록한 양기대 전 의원 측은 지난 23일 “짐 로저스 회장이 과거 양 예비후보에 대해 ‘민간인이었다면 당장 스카우트하고 싶을 정도의 선구안과 도전 정신을 가졌다’며 ‘투자자들도 한 수 배울 만한 혁신’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고 밝혔다. 2017년 시장 재임 중 만났던 로저스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자신을 홍보한 것인데, 양 후보 측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짐 로저스도 인정한 양기대”란 제목이 달렸고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사진도 첨부됐는데 일부 지역 언론은 이 제목·사진을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로저스는 이게 양 전 의원에 대한 ‘지지’를 뜻하냐는 질문에 “나는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 “(외국 선거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 대선을 앞두고도 로저스란 이름 때문에 선거판이 들썩했던 적이 있다.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지낸 이재강 민주당 의원과 김진향 전 개성공단 이사장 주도로 로저스가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밝혔는데, 로저스가 “이 후보에 대한 어떤 지지 선언도 한 적이 없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다니 슬프고 엽기적인 일”이라 곧바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로저스가 승인한 초안(草案)과 민주당이 실제로 발표한 선언문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조작·왜곡 논란이 적지 않았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측은 지지 선언 이후 주식시장 변동이 있었다며 “공직선거법 위반은 물론 주가조작 세력과의 결탁을 수사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이사장이 “이재명 지지는 사실”이라며 대선 이후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했지만, 대선이 끝난 뒤 로저스 논란은 사실상 유야무야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서울 정동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화상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의 권위 있는 인사의 발언 등을 빌려 이를 ‘지지 선언’으로 포장하거나 자기 홍보에 활용하는 것은 주요 선진국 중 한국 정치에서만 볼 수 있는 후진적인 초식이다. 여권이 로저스를 특히 선호하는 것은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등에 비견되는 ‘전설적인 투자의 귀재’인 그가 과거 “북한에 전 재산을 투자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남북 경제협력과 대북(對北) 투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해 왔기 때문이다.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 상당한 팬덤을 보유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도 여권이 애호하는 명사 중 한 명이다. 이 대통령은 2022년 대선 직전 샌델과 불평등·불공정 등을 주제로 하는 화상 대담을 했고, 지난해 9월에는 이 대통령이 샌델 교수를 접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