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정부에서 4년 내내 국무장관으로 있으면서 외교·안보 브레인 역할을 했던 토니 블링컨 전 장관이 지난 20~21일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워싱턴 DC에서 주최한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 무대에 올라 기타를 잡고 록밴드 공연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시작돼 한국, 미국, 일본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와 재계 인사 등이 모이는 이 행사는 기본적으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지만 이번 행사에 참석한 미 조야(朝野) 인사들 사이에서는 “블링컨의 공연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호평이 나오고 있다.
블링컨은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앞에서 브람스를 연주했던 콘돌리자 라이스와 함께 미국의 전직 외교 수장 중 손에 꼽히는 음악 마니아다. 특히 2021년 잡지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아마 음악일 것”이라며 로큰롤 사랑을 고백한 적이 있다. 2022년 한미 외교장관 회담 기자회견에서는 당시 K팝 인기 걸그룹이었던 트와이스 목격담을 전하며 “엄청났다”고 했다. 2023년 11월 서울에서는 당시 카운터파트였던 박진 외교부 장관과 합동 공연을 할 의향이 있냐는 본지 질의에 “우리 모두가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동맹을 아끼는 것처럼 막역한 사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그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 백악관 국빈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해 한미 간 회담에서 음악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 시기였다.
이날 블링컨이 소속돼 공연한 밴드의 비공식 이름은 ‘사운드 폴리시(sound policy)’였는데, 여기에는 ‘소리에 관한 정책’과 ‘건전한(sound) 정책’이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대개 이런 류의 학술 행사는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데,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 오른 블링컨의 예상치 못한 공연에 기립박수와 환호성이 쏟아졌다고 한다. 블링컨은 현직에 있을 때도 로큰롤 마니아답게 음악과 외교의 결합을 시도했다. 퀸시 존스 같은 거장과 협력해 음악을 매개로 하는 문화 교류, 평화 증진을 추구했던 ‘글로벌 음악 외교 이니셔티브’ 출범을 주도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압권은 2023년 국무부 행사에서 블루스 대가 머디 워터스의 ‘후치 쿠치 맨’을 불러 이 동영상이 바이럴(viral·유행의 빠른 전파)이 된 것이었다.
블링컨은 지난해 1월 퇴임 이후 공개 활동을 삼간 채 회고록 집필에 집중했고, 일곱 살 아들과 다섯 살 딸을 양육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정부의 지난 4년 외교·안보 비화를 담은 회고록이 올해 출간될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