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위원장에게 증인선서문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위원장 짐 조던 공화당 의원)가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에 출석하라는 소환장을 발부한 가운데, 쿠팡 측이 23일 있을 의회 청문회를 앞두고 경찰, 공정거래위원회(KFTC) 등 우리 정부와의 통신 기록이 담긴 문서·영상 수천 건을 사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일부 여당 의원이 로저스를 상대로 욕설을 하고 “몽둥이가 모자라다”고 했던 지난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 영상 등도 포함됐다고 한다. 이번 조사는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차별’ 조치에 대한 조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추후 위원회 차원의 중간 보고서 발표, 공개 청문회 및 입법 같은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법사위 사정에 밝은 한 의회 소식통은 21일 본지에 “하원 법사위가 발부하는 소환장의 주요 목적은 쿠팡과 한국 정부 간에 오간 문서, 통신 기록을 확보해 어떤 상호 작용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공개 요구 범위가 광범위하다”며 “쿠팡 측이 청문회를 앞두고 소환장 발부에 따른 법적 의무를 따르기 위해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와 통화 기록, 영상 클립 같은 자료를 위원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의회가 발부한 소환장에는 국회, 사법부, 대통령실, 총리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외교부, 공정위 등 3부 주요 기관을 망라하는 ‘대한민국 정부(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와 오간 기록 일체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법사위에 전달된 자료중에는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이 불거진 쿠팡을 넘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공정위 같은 규제 기관이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미국 기업을 상대로 취한 ‘차별적이고 불균형적인’ 조치에 관한 내용도 포함됐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외국 정부의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간 미 조야(朝野)에서는 낮은 조사 개시 기준, 영장 없이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자료 ‘임의 제출’ 같은 공정위의 조사 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

공화당 소속 짐 조던 미 하원 법사위원장이 11일 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공화당 소속인 짐 조던 법사위원장과 스콧 피츠제럴드 규제 개혁·반독점 소위원장은 지난 5일 공개한 서한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강력한 제재와 고액 벌금을 요구하고,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영업 정지 가능성까지 언급했다는 점을 명시하며 “쿠팡 표적화와 미국인 임원에 대한 기소 가능성은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불필요한 장벽을 제거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약속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 했었다. 법사위는 유출된 개인정보가 금전·재산 피해로 이어진 ‘2차 피해’가 아직까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민관합동 조사단 발표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 일부 고위 관계자들이 언론에 허위 정보를 제공해 사실을 오도하고 근거 없는 공포를 부추겼다”는 문제의식도 갖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쿠팡 측이 제출한 자료에는 이와 관련된 김민석 국무총리,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등의 관련 발언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김승원 민주당 의원이 지난 1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유출 용의자가 성인용품을 주문한 3000명을 선별해 별도 리스트를 만들어 협박을 했다”고 주장해 김 총리가 이에 대해 “거의 역대급”이라 했는데, 이런 ‘금전 협박’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도 쿠팡 측 주장이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정부가 20일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결로 무효가 된 상호 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사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한국에 디지털 기업에 대한 ‘불공정 대우’를 문제 삼아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20일 성명에서 이번 조사가 “주요 교역 상대국 대부분을 다룰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는데, 무역법 301조는 미국의 무역을 제한하거나 부담을 주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동이 있을 경우 정부가 관세 부과 같은 수단을 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형 로펌 변호사 출신인 그리어는 이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 지분을 들고 있는 미국의 기관 투자자들은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부당하고 차별적인 행동’을 주장하며 지난달 트럼프 정부에 무역법 301조 조사 청원을 넣었고, USTR이 조만간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2024년 워싱턴 DC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