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5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에 대한 소환장(subpoena)을 발부하고 한국 정부와의 통신 내역 전부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가운데, 쿠팡 측은 이날 본지에 “소환장에 따라 문서 제출과 증인 진술을 포함한 하원 법사위원회의 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개인 정보 유출에서 시작된 쿠팡 사태가 한미 간 통상 갈등으로 불거진 뒤 고위급에서 통상 교섭 시도가 여러 차례 이뤄졌지만 23일 의회 소집까지 이뤄지면서 쿠팡 같은 기업이 “한미 관계를 흔들지 못할 것”(김민석 국무총리)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이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우라늄 농축,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같이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자료)상의 안보 합의도 흔드는 변수로도 작용하기 시작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본지에 “경제 분야 관세 협상과 안보 협상은 한미 간 합의를 떠받치는 두 개의 큰 축으로 관세·안보 분야는 별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하나가 흔들려 사달이 났고 다른 쪽으로 번지는 기류가 있다”고 했는데, 안보 분야 합의를 위한 후속 조치가 미국 측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금은 기류가 바뀌었다”고 했다. 지난 10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 소셜’에서 “한국의 원잠 건조를 승인했다”고 밝힌 것은 진영에 관계 없이 성과라는 얘기를 들었다. 안보실은 이런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원잠, 농축우라늄, 국방예산을 협의하는 3개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외교부 주도로 ‘한미 원자력 협력을 위한 범정부 TF’까지 등장했다. 정부 소식통은 “트럼프 정부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상반기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고 어느 정도 ‘대못’도 박아야 하는데, 예상보다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하고 초조한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원잠 하나만 봐도 의회 승인 등 실제 건조·도입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히 트럼프가 지난달 26일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등을 문제 삼아 한국산 자동차 등에 부과한 15% 관세를 25%로 10%포인트 상향 조정하겠다고 밝힌 것을 전후로 미 조야(朝野)에서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 직후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두 차례 만나 협의했지만 뚜렷한 합의점에 이르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고, 무역 수장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자신의 카운터 파트인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 DC에 나흘 동안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대면(對面)을 위한 시간을 내지 않았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한국 국회가 승인하기 전까지 무역 합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2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실리콘밸리 테크 리더들의 후원을 받는 J D 밴스 부통령은 김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쿠팡 사태를 언급하며 “한미 간에 오해·갈등이 없도록 당부해달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우리 정부가 ‘디지털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말라’는 팩트시트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배어 있다.
이런 가운데 의회·국무부 등서 ‘검열 법안(censorship bill)’이라 비판받은 정보통신망법 논란에 이어 하원까지 법사위가 나서서 쿠팡 사태에 대한 조사를 공식화하면서 무역 합의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가 쿠팡에 공정위 등 우리 정부와의 통신 내역 일체를 요구한만큼, 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이 수반될 수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5일 브리핑에서 트럼프가 예고한 대(對)한국 관세 인상의 구체적인 적용 시기와 관련해 “나는 그것에 대한 시간표를 갖고 있지 않다”며 “백악관의 우리 무역팀이 당신에게 신속하고 지체없이 답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관세를 25%로 상향하는 관보 게재까지 이뤄질 경우 이를 되돌리는 작업까지 추가적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한미 간 협상이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공언한 대로 특별법을 처리해도 트럼프 정부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지도 미지수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최근 “협상 방식이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했고, 윤건영 의원은 “트럼프의 행태는 도를 넘어선 것으로, 미국 국내용 정치 액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