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미투자특별법 처리 지연을 문제 삼아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밝힌 가운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약 40분의 외교장관 회담 시작에 앞서 “한미 관계가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한국 정부의) 통상 공약 이행과 관련해 (트럼프 정부) 내부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조현 외교부 장관이 5일 전했다. 지난 3일부터 미국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조 장관은 이날 오후 워싱턴 DC의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통상 합의 이행 지연으로 인한 부정적인 기류가 한미 관계 전반에 확산되지 않도록 더 긴밀히 소통하면서 상황을 잘 관리해 나가자고 얘기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조 장관은 이날 “우리 정부의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 자료) 합의 이행 의지는 확고하고, 법안 처리 속도를 늦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했다”며 “원자력 협력, 핵(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이 충실이 이행될 수 있도록 미 관계 부처를 계속 독려해 나갈 것을 부탁했다”고 했다. 루비오는 “통상이든 안보든 합의 이행 지연이 생기는 것은 미국 정부도 원하지 않는다”며 “팩트시트 성격을 고려하면 국무부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주로 후속 절차를 주도하게 되는 만큼 이를 잘 챙겨보겠다고 얘기했다”고 전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팩트시트와 관련해 미국이 갖고 있는 불만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비(非)관세 장벽”이라고만 답했다.
조 장관은 방미 기간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대응해 띄운 핵심 광물 공급망 협의체인 ‘포지(FORGE) 이니셔티브’ 출범 행사를 계기로 통상 수장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리어는 관세 재인상이 초래할 수 있는 파장을 이해하지만 “한국이 대미(對美) 투자 뿐 아니라 비관세 장벽과 관련한 사안에서도 조속히 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조 장관은 전했다. 그리어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같은 ‘불균형’, 비관세 장벽 해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일본 사례 등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과의 대화에서는 “한국의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핵추진 잠수함(원자력 추진 잠수함) 분야에서 구체적인 진전을 만들자는 공감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본지에 “경제 분야 관세 협상과 안보 협상은 별개가 될 수 없다”며 “하나가 흔들려 사달이 났고 다른 쪽으로 번지는 기류가 있다”고 했다. 미국 디지털 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차별적 조치, 의회에서 ‘검열 법안’이라 명명(命名)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같은 국회 입법 등에 대해 미 조야(朝野)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온 가운데 통상 분야 이견이 안보 분야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고위 당국자는 미 하원 법사위원회가 최근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법인 임시 대표를 의회로 부르고 한국 정부와의 통신 내역 일체를 요구한 것 관련 “쿠팡의 로비에 의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우리 정부도 분명한 입장을 갖고 추후 소송 과정에서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메시지 관리에 세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고위 당국자는 이날 “미·북 대화까지는 아니지만 며칠 내 북한과 관련한 어떤 새로운 진전 사항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진전’에 대해 “거창한 것은 아니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단초가 될 수 있는 성의 차원 같은 것”이라며 “미·북 대화를 하거나 그런 것 까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미·북 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북한의 입장이 확고하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조 장관은 루비오에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며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미 간 긴밀한 소통·공조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