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소속인 짐 조던 하원 법사위원장과 스콧 피츠제럴드 규제 개혁·반독점 소위원장이 5일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에 대한 소환장(subpoena)을 발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사위는 “공정거래위원회(KFTC)를 포함한 한국의 정부 기관이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차별적인 조치를 더욱 강화하고 있고, 미국 시민에 대한 형사 처벌 위협까지 제기하고 있다”며 로저스가 23일 위원회에 출석해 한국 정부의 미국 혁신 기업 ‘표적화’에 대해 증언하고 한국 대통령실·정부·국회 등과 통신한 기록 전부를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의회 소환장을 받고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의회 모독 등으로 기소될 수 있어 상당한 구속력을 갖는다. 이번 소환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미투자특별법 지연을 문제 삼아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를 25%로 올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이날 본지가 입수한 소환장과 서한을 보면 법사위는 로저스 쿠팡 최고행정책임자(CAO) 겸 법무 총괄이 한국 정부의 차별적 규제 집행 여부에 대한 의회의 감독·조사에 응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불거진 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에 임명된 로저스는 지난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했고, 이후 증거 인멸·위증 혐의 등으로 최근 경찰 조사를 받았다. 트럼프 정부와 의회를 비롯한 미 조야(朝野)는 자국 테크 기업에 대한 외국 정부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위원회는 “우리는 과거부터 한국의 공정위가 미국의 혁신 기업을 표적 삼아 과징금·벌금을 남발하고 차별적인 집행을 통해 자국 경쟁사를 보호한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며 “최근 수개월 동안 차별적 조치가 강화됐고, 미국 시민에 대한 형사 처벌 위협까지 제기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23일 있을 청문회에서는 법사위 소속 위원들이 공화·민주 등 소속 정당을 가리지 않고 로저스 대표를 상대로 쿠팡에 대한 질의를 쏟아낼 것으로 보인다. 로저스는 국회 과방위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몽둥이도 모자르다”(김영배 의원)는 질타를 받았고, 조인철 의원은 질의 과정 중 욕설을 한 것이 논란이 됐다. 앞서 지난달 13일 열린 하원 세입위위원회 무역소위에서는 “한국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디지털 무역장벽에 직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팩트 시트(fact sheet·공동 설명 자료)’와 달리 쿠팡 같은 미국 기술 리더들을 공격적으로 표적 삼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위원회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고액 벌금을 요구하고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영업정지 가능성까지 언급했다는 점을 명시하며 “쿠팡 표적화와 미국인 임원에 대한 기소 가능성은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불필요한 장벽을 제거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약속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온라인플랫폼법 같은 규제 입법에 대한 우려도 명시됐는데, 공정위가 유럽 경쟁사에 유리하게 설계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모델로 하고 있다며 “이런 조치는 소비자와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고 혁신을 저해하며 중국과 밀접한 기업들에 이익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이어 연구를 인용해 “DMA를 본뜬 한국 정부의 법안이 미 기업을 주요한 표적으로 삼는 반면, 자국 중소기업과 중국 경쟁사는 면제하는 경향이 명확하다”고 했다. 이날 서한을 발송한 조던의 정책·전략 담당 수석을 지낸 타일러 그림은 현재 쿠팡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로 등록돼 있다. 그가 속한 ‘밀러 스트래티지스(Miller Strategies)’는 트럼프 정부 들어 워싱턴 DC에서 가장 잘나가는 로비 회사 중 하나로, 대표 제프 밀러는 트럼프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같은 실력자들과 직통이 가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 의회에서 ‘로저스 청문회’가 이뤄지면 파장이 적지 않을텐데, 청문회 성사 과정에서 쿠팡 로비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 하원의 로저스 소환은 최근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이 쿠팡을 비롯한 자국 테크 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차별’을 문제 삼고 이게 무역 합의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J D 밴스 부통령은 지난달 23일 민주화 이후 처음 워싱턴 DC를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나 쿠팡 사태에 대해 질의하며 “한미 관계에 오해와 긴장이 없도록 관리해달라”는 당부의 뜻을 전했다. 대형 로펌 변호사 출신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미 기업 규제에 부정적인 입장인데, 트럼프가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10%포인트 인상하겠다고 밝힌 뒤 카운터 파트인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나흘 동안 워싱턴 DC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통상 수장 간 면담이 성사되지 못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29~30일 양일 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두 차례 면담했지만 빈 손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