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울주군에 있는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전경. /고려아연

세계 최대의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회장과 최대 주주인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1년 넘게 분쟁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영풍·MBK파트너스가 미 의회에 로비 활동을 하기 위해 현지 대형 로펌을 로비스트로 신규 선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큰 승리”라 밝힌 고려아연의 테네시주(州) 대규모 제련소 건설에 관한 로비 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 투자를 최 회장의 ‘백기사 만들기’라 비판해 온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상당한 견제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고려아연은 워싱턴 DC의 로비 시장에서 단기간에 ‘큰 손’으로 등극했는데, 경영권 분쟁이 미국으로 무대를 옮기게 됐다.

2일 미 하원이 공개한 로비스트 등록 내역을 보면 영풍(YPC),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해 설립한 특수 목적 법인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KCIH)’가 오하이오주(州)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형 로펌인 ‘스콰이어 패이튼 보그스’를 신규 로비스트로 선임했다. 로비 의뢰 주체로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명시됐다. 구체적인 로비 이슈는 ‘테네시주 핵심 광물 제련소에 대한 외국인 투자’라고 밝혔는데, 이 연합은 지난해 고려아연이 테네시 클락스빌에 최대 11조원 규모 투자를 결정하자 최 회장이 경영권 확보를 위해 ‘백기사’를 동원한 것이라 비판했다. 테네시 프로젝트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 속 트럼프 정부의 핵심 광물 공급망 다변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미 국방부(전쟁부)가 합작 법인에 참여하고 투자금을 지원하는 반대급부로 상당한 지분을 가져가게 된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지난해 12월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법원이 유상증자가 경영권 방어 목적이 아닌 자금 조달을 위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최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에 힘을 실어줬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투자 결정 직후 “미국의 큰 승리”라 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이면서 테네시가 지역구인 빌 해거티 상원의원은 “한국과 같은 신뢰할 수 있는 동맹과 협력해 미국의 경제 안보를 회복하려는 대통령의 노력을 지원하는 직접적인 성과”라고 했다. J D 밴스 부통령의 측근이자 핵심 광물 다변화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제이콥 헬버그 국무부 경제 담당 차관은 고려아연 투자 건을 ‘모범 사례’로 꼽으며 “미국의 재산업화를 위한 노력에 중요한 이정표”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신규 로비스트를 선임한 것은 의회를 상대로 하는 채널을 개설하고, 이걸 넘어 미 조야(朝野)에 테네시 투자 건에 문제가 있다는 네러티브를 발신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달 19~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고려아연

고려아연은 트럼프 정부 들어 대형 로펌, 로비스트, 자문 회사들이 즐비한 워싱턴 DC의 K스트리트에서 가장 주목 받는 고객 회사 중 하나다. 지난해 트럼프와 직통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브라이언 발라드의 ‘발라드 파트너스’, 백악관 실세인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이 근무했던 ‘머큐리 퍼블릭 어페어스(MPA)’를 잇따라 자사 이익을 대변할 로비스트로 선임했다. 특히 MPA와 맺은 계약의 경우 지난해 1분기 기준 단일 거래로는 9번째로 금액이 높아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적잖은 화제가 됐다. 최 회장도 최근 워싱턴 DC의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대담을 하는 등 미 조야를 상대로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삼프로TV 인터뷰에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희귀 금속 수요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테네시) 프로젝트를 통해 11가지 정도는 반영구적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