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7일 한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인상을 밝힌 지 하루 만에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아이오와주(州) 방문 중 취재진으로부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올릴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밝혔다. 이에 따라 양국 협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부와 의회를 비롯한 미 조야(朝野)에서는 한국의 합의 이행 속도와, 미국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대우 논란 및 디지털 규제 움직임에 대한 불만이 상당해 추가 압박은 언제든 재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와 관련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미국의 불만은 100% 국회에서의 입법 지연에 있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백악관은 이날 트럼프가 관세 인상을 결정한 배경을 묻는 본지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관세를 낮춘 반면, 한국은 약속을 이행하는 데 있어 전혀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며 “한국이 관세 인하를 위해 합의를 했는데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 단순한 현실”이라고 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관세 인하의 반대급부로 약속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 대미(對美) 투자의 선결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서 3개월째 처리되지 않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무역 수장인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폭스뉴스에 “한국은 우리 동맹이고 특별한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그러나 그들은 지금까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디지털 서비스에 관한 새 법안을 도입했을 뿐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새 법안’은 지난해 말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이번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워싱턴 DC를 방문해 각각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그리어 등을 상대로 특별법 일정과 투자 이행계획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 美, 쿠팡·빅테크 규제에 상당한 반감… 통상 갈등 불씨로
트럼프가 한국산 자동차 등에 부과한 관세를 15%에서 25%로 10%포인트 올리겠다고 밝힌 지 불과 하루 만에 협의 가능하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관세를 앞세워 압박·대화를 병행하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 방식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아이오와 연설에서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은 채 “내가 ‘당신이 그것을 하지 않으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더니 그들이 ‘우리가 하겠다’고 했다”며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자신의 방식을 재차 부각했다.
우리 정부는 향후 협의 과정에서 대미투자특별법의 구체적 처리 일정, 단계별 이행 계획을 제시하며 대미 투자 약속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다음 주 방미(訪美)가 예정돼 있어 외교적 봉합에 나설 예정이다. 미측이 이를 납득하면 트럼프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전한 관세 인상 방침이 보류 또는 철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특별법 처리가 지연되거나 환율 여건 악화 등으로 실제 투자 집행에 제약이 발생할 경우 트럼프 정부의 불만이 재차 표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부과한 상호 관세 위헌(違憲) 여부를 심리하고 있는 연방대법원 판결이 이르면 2월 중 나올 가능성이 큰데, 미측은 국내 입법 등을 통해 미리 ‘대못’을 박아두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쿠팡 등 미국 기술 기업에 대한 우리 정부의 규제에 대해 트럼프 정부 인사들이 갖고 있는 반감이 계속해서 문제가 돼 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하원 공화당 법사위원회(위원장 짐 조던 의원)는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트럼프의 관세 인상과 관련해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했고, 공화당 소속 대럴 아이사 의원은 X에 “우리 의회나 대통령은 미국 기업에 대한 공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어 USTR 대표가 “한국은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디지털 서비스에 관한 새 법안을 도입했을 뿐”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국회가 특별법은 뭉개면서 미국에서 ‘검열 법안’이라 비판받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규제 입법을 추진하는 상황 등을 종합해 지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3일 J D 밴스 부통령이 백악관에서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났을 때 “쿠팡 같은 미국의 기술 기업을 겨냥한 제재와 규제를 추진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밴스가 쿠팡 사태와 관련해 한미 관계에 “오해와 긴장이 없도록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김 총리의 설명과 비교하면 온도차가 있는 묘사다. WSJ는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최근 논의의 상당 부분은 쿠팡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며 “(관세 인상을 발표한) 트럼프의 게시물은 미 기술 기업에 대한 한국의 대우, 한국 내 기독교에 대한 조치 등을 포함해 여러 사안에 대한 일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커지는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쿠팡 사태 및 온플법 제정 문제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추측에 대해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28일 브리핑에서 “(트럼프가) 한국 정부가 아닌 국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했다”며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은 “미국 입장에선 한국 정부가 법안을 제출해 국회에서 심의해야 대미투자펀드 절차가 시작되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법안의 진척 정도, 국회에서 심의하는 전반적 절차가 미국의 기대보다는 느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