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6일 무역 합의 이행 절차 지연을 이유로 한국산 자동차·의약품 등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10%포인트 인상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백악관은 27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관세를 낮춘 반면, 한국은 약속을 이행하는 데 전혀 진전(no progress)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의 상호 관세 인상 발표는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을 통해 사전 예고 없이 이뤄진 것으로 우리 정부가 뒤늦게 배경 파악에 나선 상태다. 트럼프는 아이오와주(州) 현지 일정 중 질문을 받고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공화당은 자국 기업인 쿠팡을 ‘부당하게 겨냥’한 것이 관세 인상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트럼프의 관세 인상 결정 배경, 별도 입장을 묻는 본지 질의에 “한국은 관세 인하를 위해 트럼프 정부와 합의를 도출했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단순한 현실(simple reality)”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우리 정부가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3500억 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이를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은 점을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별개 사안이 아닌 진척도를 이유로 기존 무역 합의를 번복한 것은 한국 사례가 처음이다. 5000억 달러 대미 투자를 약속한 일본의 경우 3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 방미(訪美)를 계기로 ‘1호 투자 프로젝트’ 발표가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50억 달러 짜리 데이터센터 인프라 등 구체적인 프로젝트 이름까지 거론된다.

트럼프는 전날 “한국 입법부가 한국과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자동차, 목재, 의약품에 대한 관세와 기타 모든 상호 관세를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미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위원장 짐 조던 의원) 공화당 측은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서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글을 캡처한 뒤 “이것은 쿠팡과 같은 미국 기업들을 부당하게 표적으로 삼을 때(unfairly target) 발생하는 일”이라고 했다. 트럼프 정부와 의회는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외국 정부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J D 밴스 부통령이 지난 23일 김민석 국무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도 쿠팡 사태에 대해 문의하며 한미 관계에 오해가 없도록 관리해달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27일 국회에서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들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관세 인상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뉴스1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7일 국회 재경위 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른다”고 했는데,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일정을 마친 뒤 이르면 29일 워싱턴 DC를 방문해 카운터 파트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면담을 시도할 것으로 알려졌다.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정의선 현대차 회장 등 정부 특사단이 대규모로 현지에 파견돼 있는데, 일각에서는 미국이 투자 협의 지연을 문제 삼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 등이 절충 교역 차원에서 투자 패키지를 제시한 모양새가 트럼프 정부 일부 인사를 불편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앞서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를 계기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만났지만 이번 조치와 관련해 별다른 언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난 8월 청와대가 ‘핫라인(hotline)’ 개설을 주장한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백악관 실세인 수지 와일스 간 채널이 가동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1987년 이후 현직 국무총리로는 처음 워싱턴 DC를 방문했다는 김 총리도 지난 23일 특파원 간담회에서 “밴스와 앤디 베이커 국가안보 부보좌관이 번호를 알려줬다”며 핫라인 개설을 얘기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