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 인근 국방부 청사. /로이터 연합뉴스

23일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새 국방 전략(NDS)은 미국의 앞마당인 서반구(西半球)를 ‘본토’로 규정하며 본토 방어에 전략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북한의 위협을 평가하면서도, 이를 억제하기 위한 동맹의 지역 방어 책임과 역할 분담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NDS는 미 국방부가 의회에 보통 4년 주기로 제출하는 최상위 국방 전략 문서로, 군사 정책과 국방 운영의 방향을 제시한다. 지난달 백악관이 발표한 외교·안보 분야 최상위 나침반인 ‘국가안보전략(NSS)’의 하위 문서 격으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담고 있다.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은 다음달 11일 서반구 안보 협의를 위한 군사회의를 열기로 하고 34개국의 국방부 또는 군 고위 관계자들을 초청했다고 23일 밝혔다.

◇ ‘본토 방어’가 최우선

국방부는 이날 공개된 NDS에서 남·북 아메리카 대륙, 그린란드를 포함하는 서반구를 사실상의 ‘본토’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는 ‘돈로 독트린’을 표방했다. 트럼프가 제안한 차세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골든돔’, 마약 테러리스트 대응, 첨단 드론을 통한 미 영공 방어 등이 본토 방어를 위한 핵심 요소로 제시됐다. 또 “국가 전체 전략과 국방 전략에 부합하는 강력하고 안전하며 효과적인 핵무기 전력이 필요하다”며 “우리의 핵전력을 현대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킬 것”이라고 했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포함해 아메리카만(멕시코만), 파나마 운하 같은 ‘핵심 지역’에 대한 “군사적·상업적 접근을 확보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래픽=이진영

◇ ‘지역 방어’의 동맹 책임 강조

NDS는 ‘동맹의 분담’을 별도 섹션으로 다루면서, 본토 이외의 지역 방어에 대해선 동맹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유럽, 중동, 그리고 한반도에서 동맹·파트너들이 자국 방어의 일차적 책임을 맡도록 하는 유인을 강화하는 것을 우선한다”며 “미군은 핵심적이지만 제한적인 자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더 제한적인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대북 억제에서 주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다”고 했다.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 억제(핵우산) 옵션은 계속 제공하지만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늘려 재래식 방위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위협은 후순위로 조정했다. 2022년 바이든 정부는 북한을 중국·러시아 바로 다음의 위협으로 규정했지만, 이번엔 중국·러시아·이란 뒤로 밀렸다. 또 지난 NSS와 마찬가지로, 북한 비핵화를 명시적 목표로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해선 ‘골든돔’과 ‘핵 전력 현대화’를 통해 억지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등 다른 동맹에 비해 국방 지출 수준이 준수하다고 보고 있다. 유럽을 향해선 나토를 통해 미국에 안보를 ‘무임승차’했다며 “나토가 유럽의 재래식 방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맡도록 하겠다”고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대해서도 유럽의 책임이 크다고 봤다.

◇ 中은 힘으로 억제… ‘괜찮은 평화’가 목표

미 7함대 페이스북 중동으로 향하는 링컨 항모 전단… 美·이란 긴장 고조 미국이 반정부 시위로 유혈 사태가 격화한 이란에 군사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항모 전단을 중동으로 집결시키면서 역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미 해군 3함대 소속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왼쪽)와 구축함 3척 등이 최근 남중국해를 출발해 인도양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미국이 조금이라도 공격을 가해오면 ‘전면전’을 불사하겠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에이브러햄 링컨호가 아시아태평양 작전 지역에서 급유함 헨리 J 카이저호로부터 연료를 공급받는 모습.

NDS는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에 대해 “미국에 유리하면서도 중국이 받아들이고 공존할 수 있는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통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격해 봐야 소용이 없다’는 판단이 들게 하는 ‘거부에 의한 억제(deterrence by denial)’를 추구한다. 상대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거부한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평소 강조해 온 ‘힘을 통한 평화’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제1도련선(島鏈線·일본 규슈 남단부터 대만, 필리핀까지로 설정된 1차 방어선)을 따라 “강력한 거부적 방어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추후 주일미군사령부 위상 강화, 주한미군의 유연성 확대와 같은 인·태 지역 미군 자원의 태세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NDS는 “우리의 목표는 중국을 포함한 그 누구도 우리나 우리 동맹국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며 “중국을 지배·압박하거나 굴욕감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서술은 바이든 정부가 중국을 ‘가장 중요한 장기적인 전략적 도전’이라 명시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유화적으로 변한 것이다.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잭 쿠퍼 미국기업연구소(AEI) 선임연구원은 언론에 “중국은 자국 연안에서 미군의 작전 위험을 높이려 하고 있어, 미국이 원하는 의미 있는 위기 관리 메커니즘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현대화·다양화하고 있고, 미 본토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중·우주·사이버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면서도 “유럽의 패권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고 했다. 재클린 라모스 전 국무부 부차관보는 “(미국이) 유럽을 전략적 닻이라기보다는 관리해야 할 불편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며 “유럽이 자국 방어의 일차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가정했는데, 모스크바가 그 가정을 시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