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국방 전략(NDS)이 공개됐다. NDS는 국방부가 의회에 보통 4년 주기로 제출하는 최상위 국방 전략 문서로, 군사 정책과 국방 운영 전반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본토에 대한 분명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라 평가하면서도 재래식 전력 대응을 포함한 대북 억제는 한국이 더 많이 책임져야 한다는 방향을 선명하게 제시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고 비핵화에 관한 언급도 없어 대북 대화를 중시하는 트럼프·이재명 정부 기조와 맞물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더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NDS는 지난달 발표된 외교·안보 분야 최상위 나침반인 ‘국가안보전략(NSS)’의 하위 문서 격이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국방 전략의 입안자라 할 수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이 작성을 주도했는데, 국방부는 24일 콜비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 의제를 증진하기 위해 이번 주말 한국과 일본을 차례로 방문한다”고 전했다. 콜비는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한국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과 비해 국방 지출 수준이 준수한 ‘모범 동맹(model ally)’이라 언급한 적도 있는데, 이번 NDS에는 콜비의 이런 시각이 곳곳에 녹아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이미 지난해 9월쯤 NDS 초안(草案)이 작성돼 공개 시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NDS는 미국이 한국의 방위를 위해 제공한 지원을 “더 제한적인 수준(critical but more limited US support)”으로 줄이더라도 한국이 대북 억제에 있어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이 자체 대응하기 어려운 핵·미사일에 대해서는 예전과 같이 확장억제(핵우산)를 제공하겠지만, 재래식 방위는 한국군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한미가 발표한 팩트시트를 보면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5%로 증액하고 250억 달러(약 37조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도 구매한다고 돼 있다. 국방수권법(NDAA)이 보장하고 있는 약 2만8500명의 주한미군 주둔 규모에는 크게 변화가 없더라도 구성 같은 태세에 있어서 일부 조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NDS는 “이런 균형 조정은 한반도에서 미군의 태세를 업데이트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이익과 부합한다”고 했다.
NDS 역시 NSS와 같이 서반구(西半球) 방어를 최우선 순위로 거론하며 마약 테러리스트 대응, 드론 특화 조치를 통한 미 영공 방어 등을 망라했다. 이어 중국을 2순위로 언급했는데 인도·태평양 지역의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라는 표현을 쓰면서 “대결이 아닌 힘을 통해 인·태 지역에서 중국을 억제한다”고 했다. NDS는 “제1도련선(島鏈線·일본 규슈 남단부터 대만, 필리핀을 연결하는 방어선)을 따라 강력한 거부형 방어를 구축하고 배치, 유지할 것”이라 했는데, 미 국방부는 현재 이런 차원에서 3성(三星) 장군이 이끄는 주일미군사령부의 위상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트럼프 정부가 ‘한국의 독자적 방위 역량 확보’ 같은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조건 달성을 지원하는 데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 국방부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에 대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안규백 장관)며 벼르고 있다.
NSS가 북한과 비핵화를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은 데 이어 이번 NDS에서도 4년 전과 비교하면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렸고 비중도 다소 줄었다. 트럼프 정부 백악관·국무부 등이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의 평소 표현과 같이 북한이 사실상의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 됐고 이에 따라 북한 비핵화 문제 해결이 요원해졌다는 미 조야(朝野)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핵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처음으로 ‘군축(disarmament)’을 언급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미·북 간 직접 대화가 성사돼 일종의 담판이 이뤄지면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북한 김씨 정권이 핵 개발에 착수한 이래 추구한 ‘제1목표’로 한국은 핵에 대한 대칭 전력이 전무한 채 이런 상황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 이번 NDS는 러시아에 대해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현대화·다양화하고 미국 본토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중, 우주, 사이버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모스크바가 유럽의 패권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며 “우리는 유럽에 계속 관여하겠지만, 미 본토와 중국 억제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을 향해선 나토 체제를 통한 ‘무임승차’를 지적하며 “나토 동맹들이 유럽의 재래식 방어에 대한 1차적 책임을 맡도록 유인하겠다”고 했다. 또 최근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를 계기로 트럼프가 군사 개입을 저울질하고 있는 이란에 대해서는 “수십 년 만에 가장 약화하고 가장 취약한 상태”라고 했다. 이번 NDS는 대만을 언급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