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국무총리는 23일 워싱턴 DC에서 J D 밴스 부통령과 만나 회담을 가졌다. 국무총리가 미국의 워싱턴 DC를 단독 방문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있는 일인데, 김 총리는 “만남 자체에 큰 의미가 있었다”며 “지속적으로 연락·소통하는 핫라인(hotline)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밴스는 이날 약 50분 동안 회담에서 김 총리에게 개인 정보 유출이 불거진 후 통상 현안으로 비화하고 있는 쿠팡 사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지난해 9월 재판에 넘겨진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 북한 김정은과의 관계 개선 방안 등에 대해 질의했다고 김 총리가 전했다. 쿠팡 및 손 목사 건과 관련해 한미 관계에 “오해와 긴장이 없도록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김 총리는 이날 오후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워싱턴특파원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총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말미에 들러 인사를 할 생각이 있었지만 이제 막 도착한 일정 때문에 아쉽다는 말씀을 (밴스 부통령이) 전했다”며 “대신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밴스를 통해) 전했다”고 밝혔다. 밴스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함께 트럼프의 뒤를 이을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김 총리는 이날 밴스에게 방한(訪韓)을 공식 초청했다고 밝혔다.
회담은 밴스가 김 총리에 관심 있는 부분을 질의하는 방식으로 일부 이뤄졌는데, 밴스가 한국의 시스템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양국 정부 사이에 오해가 없게 과열되지 않도록 관리하면 좋겠다”는 요청을 전했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는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외국 정부의 규제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는데, 김 총리 방미(訪美) 도중인 22일 쿠팡 투자사인 그린옥스·알티미터 등이 이 건과 관련해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 조사 청원을 넣고 우리 정부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국제투자분쟁(ISDS) 의향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문건을 보면 이 대통령이 ‘반미(反美)·친중(親中)’이고, 김 총리가 쿠팡 사태와 관련해 ‘마피아 소탕’ 작전을 지시했다고 돼 있는데 이와 관련 김 총리는 “보도자료를 영문으로 번역해 완전한 사실무근임을 알렸고 진행 상황을 신속하게 공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이날 쿠팡을 겨냥해 “한미 어느 정부도 특정 기업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차별을 이유로 당사국 정부에 호소해서 진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 허약한 기반 위에 있지 않다”며 “쿠팡 관련 진전 사항을 신속하게 공유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총리로서 책임감을 갖고 직접 챙길 것”이라고 했다. 쿠팡은 국내에서 대부분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델라웨어주(州)에 등록된 ‘쿠팡INC’가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들고 있는 미국 회사다. 김 총리는 전날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 투자자들이 발표한 문건에 대해 “법과 형식에 미달하고 영업 대상 고객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국민, 고객 감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문제를 푸는 것이 “너무 반(反)미국기업적”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이들이 이 대통령을 ‘반미·친중’으로 폄훼했다며 “트럼프 정부도 이런 입장은 수용하지 않을 것” “한미 관계는 특정 기업이 로비로 흔들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고도 했다.
밴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지난 9월 구속된 손 목사와 관련해 “미국 내 우려가 있다”며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고 한다. 지난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탄핵 정국 이후 미 보수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종교 인사에 대한 특검 등 국내 상황과 관련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김 총리는 “한국은 미국과 달리 정교(政敎) 분리가 엄격하고, 동시에 최근 진행되고 있는 통일교 수사 상황에 대해서도 종교적 차원이 아닌 정교의 불법 유착 측면에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밴스는 우리 시스템을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오해가 없도록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김 총리는 “저도 적극 공감했다”고 했다.
한편 김 총리는 친여(親與) 성향 방송인인 김어준씨가 여론조사 업체인 ‘꽃’의 서울시장 여론조사에 자신을 포함 시킨 것과 관련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의사가 없어서 여론조사에 포함시키지 (말라고) 누차 얘기했던 것”이라며 “또 그런 경우가 있어서 더 이상 안했으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당권 도전 등 차기 행보를 묻는 질문에는 “여기서 얘기 드릴 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