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미국 투자자들이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대응을 문제 삼아 미국 정부 개입을 요청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미국에 적대적인 인물’, ‘반미(反美)·친중(親中) 성향’ 등의 표현까지 써가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미국의 군사 작전 직전까지 반미좌파 정권이 통치한 베네수엘라에 한국을 빗대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조사에 착수할 경우 한·미 간 통상 분쟁으로 비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쿠팡의 미국 측 투자자인 그린옥스·알티미터는 22일 미 무역대표부(USTR)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아 한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와 시장 접근 제한을 요청하는 청원을 제출했다. 투자자들은 청원서에서 “쿠팡에 대한 조치는 한국 시장에서 자국 및 중국 기업들에 명백한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혁신적인 미 경쟁사를 표적으로 삼고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이는 베네수엘라나 러시아 같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예상할 수 있는 행태”라고 했다.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미국에 적대적인 인물로, 쿠팡에 대해 적대적인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며 “이런 발언은 더불어민주당의 점증하는 반미(反美)·친중(親中) 성향과도 맥을 같이 한다”고 했다.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의 적대적 태도를 비난하는 근거로 김민석 국무총리의 발언도 제시했다.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 총리는 시장질서 잡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마피아 소탕한다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총리실은 “해당 발언은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신뢰받는 경제 질서를 만들자는 취지”라며 “특정 기업이나 특정 국가는 물론 쿠팡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한 바 없다”고 반박했다.
투자자들은 “쿠팡의 뉴욕 증시 주가가 정보 유출 사건 뒤 약 27% 하락했다”면서 “민주당 정부의 적대적인 표적 개입으로 인해 수십억 달러의 시가총액이 손실되고, 이런 손실을 개인 투자자와 수백만 미국 근로자의 퇴직금을 운용하는 기관 펀드 등 주주들이 부담했다”고 주장했다. 미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가 자국 기업의 상거래를 제한한다고 판단되면 관세 보복 같은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청원이 접수되면 USTR이 45일 내로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한다. 투자자들은 또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근거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신청을 제기하겠다는 의향서도 발송했다고 밝혔다.
쿠팡 청원 직후 한국을 비판하는 미 경제계 유력 인사들의 발언이 잇따랐다. 조 론스데일 팰런티어 창업자는 이날 X에 “한국 정부가 중국의 발자취를 따라 미국 기업을 불법으로 괴롭히는 것은 큰 실수”라며 “이 대통령은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위해 무역 관계를 해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썼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인공지능·가상 화폐 총괄관은 22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토론에서 한국을 비판했다. 그는 “한국은 온라인 게시할 때 사실상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검열의 추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사회자 질문에 “우리와 가깝고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이 검열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에 맞서 무역 제재, 비자 발급 거부 등 모든 수단을 사용해 맞서야 한다”고 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검열 법안’이라고 비판했던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도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한 기업에 모호한 금지를 부과하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했다.
한편 미국을 방문 중인 김 총리는 22일 연방 하원 의원 7명과의 오찬에서 “쿠팡에 대한 차별은 전혀 없으며 차별적 대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미 관계는 신뢰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고 총리실이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