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11월 쿠팡이 뉴욕 증시에 상장했을 당시 뉴욕증권거래소(NYSE) 앞 모습. /AP 연합뉴스

쿠팡의 미국 투자사 2곳이 22일 우리 정부가 쿠팡에 대해 차별적인 대우를 하고 있다며 무역대표부(USTR)에 조사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하고, 우리 대통령을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의향서도 제출했다. 지난해 11월 30일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뉴욕증시에서 주가가 약 27% 하락했는데, 쿠팡을 겨냥한 경쟁 당국 등의 대응이 일반적인 규제 집행 수준을 넘어선 ‘허위·명예훼손 캠페인’에 해당한다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이런 인식에 트럼프 정부 고위급 상당수도 뜻을 같이하고 있어 후속 무역 협상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쿠팡은 대부분의 매출이 한국에서 발생하지만, 델라웨어주(州)에 등록된 ‘쿠팡INC’가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들고 있는 미국 회사다. 투자사 그린옥스(Greenoaks)·알티미터(Altimeter)는 이날 “한국 정부의 쿠팡에 대한 조치는 한국 시장에서 자국 및 중국 기업들에 명백한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혁신적인 미국 경쟁사를 표적으로 삼고 무력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투자자와 기업을 차별 행위,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부터 보호하는 한미자유무역(FTA) 협정에 따른 조치”라고 했다. 이와 별도로 무역법 301조(외국의 불공정 무역에 대해 고율 관세 같은 보복 조치 규정)에 따라 한국 정부의 ‘불합리하고 차별적인 행위’를 조사하고 적절한 무역 구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청원을 USTR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쿠팡이 점유율을 확대함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 등에서의 집행 조치가 증가해 수백 건의 감사와 조사, 압수수색이 이뤄졌다”며 “이는 한국 및 중국 경쟁사에 부과된 규제 감시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쿠팡에 대한 전방위적 압박을 주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증거를 무시하고 수천만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허위로 규정했다” “쿠팡을 파산시키기 위해 고안된 처벌과 제재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민주당 정부의 적대적인 표적 개입으로 인해 수십억 달러의 시가 총액이 손실되고, 이런 손실은 개인 투자자와 수백만 미국 근로자의 퇴직금을 운용하는 기관 펀드 등 미국 주주들이 부담했다”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규제 당국에 “마피아를 소탕하는 것과 같은 각오로 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도 문제 삼았다. “한국이 중국의 길을 가고 있다”며 쿠팡이 카카오 페이, 업비트, 알리 익스프레스, SK텔레콤 등 다른 회사에 비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취지의 홈페이지까지 등장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EPA 연합뉴스

트럼프 정부는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외국 정부의 반응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는데, 무역 수장인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가 지난해 디지털 규제 같은 비관세 장벽을 이유로 “무역법 301조 조사를 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현재 공정위 등이 쿠팡에 대대적인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주병기 위원장은 ‘영업 정지’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쿠팡 등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미국 기업들은 영장이 없이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임의 제출’ 같은 공정위의 조사 관행에 오랜 기간 문제 제기를 해왔다. 닐 메타 그린옥스 창업자는 “가까운 동맹이 미 기업의 성공을 이유로 불이익을 가하면 한국 소비자·근로자는 물론 한미관계에도 해롭다”며 “국제 경쟁은 정치인의 변덕이 아닌 규칙에 의해 지배되도록 우리는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투자사들은 워싱턴 DC의 다국적 로펌인 ‘커빙턴 앤 벌링’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cc·참조)를 수신인으로 하는 중재 의향서도 발송했다.

로이터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 무역법, 국제 협정을 동원해 한국 당국의 조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기업 간 분쟁을 정부 간 무역 이슈로 고조시킬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한미가 발표한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 자료)를 보면 “미국 기업이 (한국의)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차별받지 않는다”고 돼 있다.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중재 신청은 본격적인 중재 절차가 시작되기 전 90일 간의 ‘냉각 기간’이 있고, 이와 별도로 USTR은 공식 조사 착수 여부 결정에 최대 45일이 걸린다. USTR 조사가 시작되면 공청회, 공공 의견 수렴 등을 거쳐 한국산 상품·서비스에 대한 관세 부과 같은 보복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어가 최근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만나 쿠팡 사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청원으로 트럼프 정부가 45일 안에 입장을 어떤 방향으로든 정리할 수밖에 없게 됐고 조사 개시가 이뤄질 경우 한미 관계에 적잖은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규제 당국에 "마피아를 소탕하는 것과 같은 각오로 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것을 문제 삼은 한 홈페이지 일부. /코리아레드플래그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