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을 대표하는 논객 중 한 명인 터커 칼슨이 최근 발행한 자신의 뉴스레터에서 “북한이 2006년 10월 ‘핵 보유국(nuclear nation)’이라 알려진 뒤 이 지역에서는 전쟁, 쿠데타, 정권 교체 같은 사례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에서의 분쟁을 억제하고 ‘안정’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폭스뉴스 방송인 출신인 칼슨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J D 밴스 부통령 등과 가까운 보수 인사로 미국이 대외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해 왔다. 지난해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이 지명까지 어려움을 겪을 때도 구명(救命)에 적잖은 역할을 했는데, 트럼프 정부 인사 중 상당수가 칼슨과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칼슨의 이런 입장은 대규모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져 트럼프가 개입을 저울질하고 있는 이란 문제에 대한 ‘불개입’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야망이 ‘과장’됐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핵을 가지더라도 오히려 지역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제안했다. 칼슨은 북한을 예로 들면서 “2006년 10월 ‘핵 보유국’이 됐지만 그 핵 확산은 미국, 서방, 다른 어떤 국가에 대한 핵 공격을 단 한 차례도 초래하지 않았다”며 이게 핵 억지력이 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강행했다. 칼슨의 주장과 달리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인정하는 핵 보유국은 아니지만, 트럼프는 북한을 여러 차례 ‘핵 보유 세력(nuclear power)’이라 불러왔다.
칼슨은 이란이 북한과 마찬가지로 핵을 보유하게 될 경우 중동 지역에서 대규모 전쟁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동 내 미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줄이고, 이스라엘이 가자·서안 지구에서 추구하려는 목표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압박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정부가 대외 문제에서 최대한 손을 떼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한 논리로 보인다. 친(親)트럼프 인사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이란 정권이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호전성을 부각한 것에 대해서는 “과장된 것”으로 일축했다. 다만 이런 칼슨의 주장은 매가 진영 내에서도 논란이 있는데,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칼슨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가 핵을 보유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주장하고 있다”며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무부 등이 공식적으로는 “완전한 북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 조야(朝野)에서는 ‘북한 비핵화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비관론도 상당한 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 관련 “비핵화가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나”라며 “1단계로 가장 현실적인 중단 협상을 하고 그 다음 핵 군축, 군축 협상을 하자”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군축(disarmament)’을 언급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인데, 이는 국제 사회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