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행사에 참석해 있다. /AF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차 총회에서 만난 행사 관계자는 “덴마크 정부가 올해 포럼에서 그린란드 이슈가 부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덴마크의 바람과 달리 130여개국에서 3000여명이 참석한 이번 다보스 포럼의 화제는 온통 ‘그린란드’와 ‘트럼프’였다.

6년만에 다보스를 찾은 트럼프는 특별연설에서 “덴마크, 그린란드에 엄청난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모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은 자기 영토를 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린란드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세계 2차 대전 당시 덴마크가 6시간 만에 독일 수중에 떨어졌다며 “그들은 스스로와 그린란드를 방어할 수 없었고, 미국이 많은 비용을 들여 우리 군대를 보내 (덴마크와 그린란드를) 지켰다”고 했다. 트럼프는 “우리가 아니었다면 여러분은 모두 독일어나 일본어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전쟁 이후 그린란드를 덴마크에 돌려준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기체 이상으로 전용기 갈아타고 온 트럼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참석차 21일 취리히 공항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용기에서 내린 뒤 수행원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트럼프는 전날 백악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전용기편으로 다보스로 향했다가, 기체의 전기 계통 이상으로 회항해 예비 항공기로 갈아타고 다시 출발했다. / AP 연합뉴스

트럼프는 “우리가 그린란드를 필요로 하는 것은 국가 안보, 국제 안보를 위한 것이지 수백 피트 아래 묻혀 있는 광물 때문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지난 수백년 동안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반구(半球·서반구)를 보호하는 정책을 구사해왔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200년 넘게 그린란드를 매입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이 거대한 얼음 조각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은 미국 밖에 없고 유럽도 판매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그린란드 매입을 위한 즉각적인 협상을 진행하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나는 물리력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며 군사적 옵션을 배제하고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앞서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일제히 비판했고, 토론세션에선 주제와 무관하게 미국인 참석자가 있으면 “트럼프가 진짜 그린란드를 가지려고 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당초 이번 다보스포럼의 핵심 의제로 예고됐던 ‘인공지능(AI)의 미래’도 뒷전으로 밀렸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다보스 시내에 마련한 임시 사무실에 걸려있는 AI관련 문구들이 무색할 정도였다. 한 참석자는 “이번 포럼은 마치 ‘그린란드 이머전시 서밋(emergency summit·긴급 정상회의)’ 같지 않냐”며 “AI나 에너지 이슈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했는데 다 묻혀버려 아쉽다”고 했다.

트럼프 연설 들으려 ‘구름 관중’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참석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기 위해 행사장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최우석 기자

행사장에서 만난 존 채프먼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총재는 “미국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1951년 덴마크와 맺은 그린란드 방위협정에 따라 미군 기지 17개를 운용했었다”면서 “이를 1개만 남겨놓고 다 폐쇄한 건 미국”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원한다면 협정을 되살려 미군 기지를 다시 늘리면 되는데, 왜 굳이 동맹을 자극하며 영토적 병합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럽 정상들이 줄줄이 연설에 나서면서 행사장은 ‘트럼프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이 용납할 수 없는 관세를 영토 주권에 대한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며 “미친 생각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지금은 신제국주의나 신식민주의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폭력보다 상호 존중을, 야만보다는 논리와 법치에 기반한 세상을 원한다”며 “프랑스와 유럽은 괴롭힘에 굴복하거나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바트르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패널 토론에서 “괴물이 되고 싶은지 아닌지는 (트럼프가) 결정할 일”이라고 했고,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 역시 “뜻이 같은 국가들과 새로운 동맹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식탁에 앉지 못하면 메뉴판에 오르는 신세가 된다”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우리의 대응은 단호하고 단결돼 있으며 비례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