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유엔 산하 국제기구 31곳을 포함해 총 66곳의 국제기구에서 미국이 탈퇴하는 내용의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다. 기후·평화·인권 등과 관련된 단체들로, 트럼프는 “이들 기구에 참여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같은 날 한편으론 미국 국방비를 약 1.7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9010억달러(약 1300조원) 수준인 국방 예산을 내년에는 1조5000억달러(약 2200조원)로 대폭 증액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해 국방 예산이 1000조원을 넘어 ‘천조국’이란 별명을 가진 미국은 ‘이천조국’ 시대를 열게 된다. 미국 국익과 직접 관련 없는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해 ‘소프트 파워’를 키우는 것보다, 실질적인 물리력을 갖추는 데 돈을 쏟아붓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같은 행보는 2차 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협력 규범과 질서에서도 벗어나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트럼프는 지난해 취임 직후 미 국제개발처를 폐쇄하고, 파리기후협약, WHO(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하는 등 글로벌 국가들이 해외 원조,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으로 힘을 모으는 활동에 거부감을 보여왔다. 이날 66개 국제기구 탈퇴 선언은 ‘미국 우선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은 모습이다. 트럼프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야 한다”고 했다.
백악관이 공개한 각서를 보면 유엔기후변화협약, 유엔민주주의기금, 유엔무역개발회의,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산하 일부 지역 위원회 등이 탈퇴 대상으로 명시돼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국제에너지포럼, 국제재생에너지기구, 세계자연보전연맹, 국제태양광얼라이언스 등도 포함돼 있다.
대부분 트럼프가 그동안 비난해 온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들이다. 백악관은 “미국의 국가 이익, 안보, 번영, 주권에 반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국민을 희생시키며 수십억 달러 세금이 외국의 ‘이익 단체’로 흘러가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트럼프는 앞서 지난해 2월 “미국이 참여중인 국제기구, 협약·조약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지를 파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연간 400억달러 넘는 예산을 써왔던 미 국제개발처(USAID)를 사실상 폐지하며 해외 원조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유엔에 대한 분담금도 체납하고 있다. 유엔은 정규 예산의 약 22%를 미국 분담금으로 충당하는데, 미국이 돈을 주지 않자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한 상태다.
트럼프는 국방 예산을 2000조원으로 늘리는 것과 관련,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 예산은 우리가 당연히 누렸어야 할 ‘드림 군대(Dream Military)’를 구축하게 해줄 것”이라며 “어떤 적이든 상관없이 우리를 안전하고 확실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서 오는 막대한 관세 수입이 발생했다”며 국방 예산에 관세 수입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해 우주 위성을 활용한 첨단 미사일 방어 시스템 ‘골든 돔’을 구축하고, 미래형 무기로 무장한 초대형 군함 등으로 구성된 ‘황금 함대’를 구축하는 등 미국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갖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트럼프는 미국의 군사력을 단순히 방어나 전쟁 억지를 위해 쓰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해 국방부에 ‘전쟁부’라는 이름을 겸하도록 한 트럼프는 이란 핵시설을 직접 공습한 데 이어, 새해가 되자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를 침공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했다. 이후엔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갖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군사 작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