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AP 연합뉴스

미 국무부가 31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으로 한국 정부가 개정안을 승인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했다. 여당이 ‘허위 조작 정보 근절법’이라 부르는 이 법은 ‘허위·불법 정보’에 대한 규정이 자의적이고 애매해 친여(親與) 단체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날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 “한미 기술 협력을 위협하는 규제 당국의 검열”이라 공개 비판한 데 이어 하루 만에 국무부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으면서 이 문제가 한미 간 새로운 통상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부는 “이 법은 특정 국가나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측과 필요한 소통을 하겠다”고 했다.

국무부는 이날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본지 질의에 보낸 대변인 명의 답변에서 “미국은 한국 정부가 네트워크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승인한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며 “이 개정안은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이용자 수,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지정해 각종 의무를 부과했다. 또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 정보를 유통해 손해를 입힌 경우 언론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 배상을 명령할 수 있도록 했다. 미 조야(朝野)에선 이를 한국 내 사업을 영위하는 구글·메타·X(옛 트위터) 등 자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로비 활동도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무부는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에 불필요한 장벽(barrier)을 세워서는 안 된다”며 “미국은 검열(censorship)에 반대하고, 모든 이에게 자유롭고 개방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하는 데 계속해서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 美, 한국 디지털 규제에 극도로 민감… FTA 회의 취소에도 영향 준 듯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 2024년 워싱턴 DC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앞서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 고위급은 우리 정부가 자국 빅테크를 조사하고 각종 사전·사후 규제를 추진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지난 11월 한·미가 발표한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를 보면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고 돼 있는데, 미국이 ‘비관세 장벽’이라 지적한 디지털 규제가 새해 한·미 간 통상 분야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정부와 미국 기업들은 개정안 통과 전에도 온라인 플랫폼법 추진, 망 사용료 부과 시도, 구글의 지도 반출 문제 같은 디지털 규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개정안은 거대 플랫폼 사업에 허위·불법 정보 삭제 등의 의무를 부과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검열’로 보고 있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온라인에서 유해 콘텐츠를 차단·관리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여기는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국무부가 DSA 제정을 주도한 EU 인사 5명을 비자 발급 제한 대상으로 지정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는데,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그들이 반대하는 미국의 시각을 검열, 억압하고 수익 창출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의 플랫폼 기업들을 강압하는 조직적인 시도를 이끌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정부가 EU와 유사하게 우리 정부에도 문제를 제기할지가 관건이다.

지난달 18일 예정됐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가 돌연 취소된 배경에도 추가 협의가 필요해 회의가 연기된 것이란 우리 정부 설명과 달리 “한국의 디지털 규제에 대한 미국의 불만이 원인”이라는 미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또 11월에는 워싱턴포스트(WP)에 “이재명 정부가 언론의 범죄화를 용이하게 하는 새로운 법률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자유로운 국민이라면 누구도 이 대통령이 한국을 이끌고자 하는 ‘오웰식 길’(개인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며 개정안 통과 시도를 비롯한 여권의 언론관을 비판하는 사설이 실렸다. 현재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실 등에도 개정안과 관련해 ‘긴급 탄원’을 요청하는 진정이 접수돼 이번 논란을 들여다보고 있다.

외교부는 1일 입장을 내고 “해당 법안은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른 사회적 폐해에 대응하고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추진됐다”며 “특정 국가, 기업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