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닉 셜리가 방문한 미네소타주의 한 데이 케어 센터. 셜리가 "수백만 달러나 (보조금을) 받았는데 아이들이 어디 있냐"고 묻자 "주 정부에 문의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유튜브

“수백만 달러나 받아 갔는데 이 데이 케어 센터(주간 보호 시설)에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있습니까?” (유튜버 닉 셜리)

미국 미네소타주(州)에서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지원금이 횡령됐다는 이른바 ‘복지 사기’ 스캔들이 미 정가를 흔들고 있다. 연방 재무부와 연방수사국(FBI) 등이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전체 피해 규모가 10억 달러(약 1조5000억원)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팀 월츠가 주지사로 있는 미네소타에는 미국 내 가장 큰 소말리아계 커뮤니티가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는 이번 스캔들을 두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민 사기의 축소판”(J D 밴스 부통령)이라며 정치 쟁점화에 나섰다. 연방 정부 자금을 빼돌려 불법 이민자 손에 돈을 쥐여주고, 그 반대급부로 정치적 우위를 공고히 하는 ‘부정 선거’ 프레임이 작동된 것이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미네소타에서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영양 프로그램 등을 통해 수억 달러가 도난당한 의혹을 보도하며 “현재까지 50건 이상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고, 최대 10억 달러의 세금이 도난당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논란에 불이 붙은 건 구독자 119만명의 보수 성향 유튜버 닉 셜리를 통해서다. 지난 26일 셜리가 올린 40분짜리 탐사 영상은 사흘 만에 조회수가 150만회를 넘었고 4만개에 가까운 댓글이 달렸는데, 아이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유령 보육원’이 주·연방 지원금으로 400만 달러 이상 수령한 사실 등을 폭로했다. 이후 정치권 공방이 본격화했는데, 톰 에머 공화당 하원 원내 총무는 “아이 한 명 없는 시설이 400만 달러를 받아 갔다”며 “월츠 주지사가 이번 사안에 관해 설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미네소타도 끔찍하지만 뉴욕, 캘리포니아, 일리노이 같은 민주당 우위 지역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할 것”이라고 했다.

조지 플로이드 3주기인 지난 2023년 5월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모습. /로이터·뉴스1

미네소타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블루 스테이트(blue state)’고, 미니애폴리스는 2020년 5월 트럼프 1기 정권을 흔들었던 고(故) 조지 플로이드 사태의 발원지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소말리아계 이민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한데, 트럼프는 이 이민자들을 “아무 기여도 하지 않는 쓰레기들(garbage)”이라 부르며 각을 세워왔다. 내각 회의에서 “계속해서 쓰레기를 우리나라로 들여오면 잘못된 길로 갈 것”이라고도 했다.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대대적인 추방 작전을 전개했고 주 방위군 투입 가능성까지 시사했는데, 이런 가운데 복지 스캔들이 터지면서 이를 불법 이민자들의 ‘부정 수급’과 연관 짓고 있다. 뉴스 네이션은 “유죄 판결을 받은 대다수가 소말리아계 미국인들”이라고 했다. 고물가 등으로 집권 1년 만에 수세에 몰린 트럼프가 정권 후반 국정 운영 동력이 달린 내년 11월 중간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지난 대선 때 재미를 본 반(反)이민 카드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크다. 복지 프로그램과 보조금 폐지, ‘작은 정부’로의 축소 등은 보수 성향 유권자에 전통적으로 소구력이 있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지시를 받아 복지 사기 스캔들을 들여다보고 있는 캐시 파텔 FBI 국장은 “현재까지 FBI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 취약 계층 아동을 위한 연방 식량 지원금 2억5000만 달러를 훔친 사기 조직을 해체했다”며 “수사를 통해 ‘피딩 아워 퓨처(Feeding Our Future)’라는 (비영리) 네트워크와 연계된 가짜 공급 업체, 유령 회사 등의 대규모 자금 세탁이 드러났다”고 했다. 이어 “이번 사건으로 78건의 기소가 이뤄졌고 57건의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며 상당한 이민자들이 사기부터 자금 세탁, 공모 등 다양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주택 안정, 자폐증 치료 프로그램 등서 수백만 달러가 유출된 사건들도 있다고 한다. 파텔은 현재 기소된 사건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지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급진 좌파는 오랜 기간 사기성 정부 프로그램을 이용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미국의 일당(一黨) 국가로 만들어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수많은 불법 이민자를 수입해 유지해 왔다”고 했다.

소말리아계로는 처음 연방 하원에 입성한 일한 오마르 민주당 의원. /AP 연합뉴스

이번 스캔들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으면서 불똥은 소말리아 난민 출신으로 여성 무슬림으로 처음 연방 하원에 입선한 일한 오마르 민주당 의원에게까지 튀었다. 오마르는 이미 매가 진영에 미운털이 박혀 있는 인물인데, 머스크는 “복지 사기 스캔들을 깊이 들여다볼수록 여러분의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여러분의 투표가 무의미해질 것이란 사실에 경악하게 될 것”이라며 “소말리아계 유권자 집단이 오마르를 당선시킨 것이 가장 명백한 사례”라고 했다. 집중 포화를 받고 있는 오마르는 “위협받지 않고 희생양이 되지도 않을 것”이란 입장이지만 민주당에서는 이번 스캔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선 주지사로 지난해 부통령 캠페인을 뛰며 전국구 인지도를 얻은 월츠 역시 정치적 위기에 직면, 일각에서는 2028년 대선은 고사하고 주지사 3선(選) 도전도 어려워졌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