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미 플로리다주(州) 마러라고의 트럼프 사저에서 만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막바지 협상에 나섰다. 트럼프는 “협상이 95% 진척됐다. 거의 다 왔다”고 했고, 젤렌스키도 “평화안 20항목 중 90%가 합의됐다”고 했다. 이날 미국과 우크라이나, 유럽 등 서방이 통일된 종전안을 거의 마련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종전안을 러시아에 넘겨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합의에 근접했다는 트럼프 말에 동의한다”면서도 돈바스 영토 장악이란 목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 종전까지는 5%의 가시밭길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날 트럼프와 젤렌스키는 서로에게 덕담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회담했다. 트럼프는 다만 “한두 개 까다로운(thorny) 문제가 있다”며 “이건 하루짜리 협상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사안”이라고 했다. 까다로운 문제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략 요충지인 돈바스 영토 문제를 가리킨다. 이번 회담을 앞두고 대대적 공습을 가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에서 군대를 완전 철수하고, 이 땅 전체를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돈바스의 90%를 점령한 상태다.
반면, 트럼프는 현재 전선에 비무장지대와 자유경제구역을 조성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한 상태다. 트럼프는 “일부는 이미 (러시아가) 차지했고, 다른 일부는 몇 달 내로 더 차지할 수 있다. 지금 거래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완강히 거부하던 입장에서 국민 투표를 조건으로 트럼프 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해 세부 내용을 협상중이다.
안전보장 기간에도 다소 이견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는 트럼프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소셜미디어에 “미국은 15년간의 안전보장을 문서화하기로 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30년, 40년, 50년까지의 가능성을 검토하고 싶다”고 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9일 브리핑에서 종전 협상이 가까워졌다는 트럼프의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목표를 달성한다는 맥락에서 군사 분쟁 종식을 고려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잃고 있고 계속 그럴 것”이라고 했다. 돈바스 지역을 완전 장악한다는 목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푸틴이 ‘아주 가까운 미래’에 트럼프와 다시 전화 통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트럼프와 젤렌스키는 EU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도 화상회의를 가졌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5조)에 준하는 안전 보장을 받도록 하고, 우크라이나가 군 규모를 축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그간 미국과 했던 협상 내용과 다르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재 러시아군 통제 아래 있는 유럽 최대 규모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운영 문제도 쟁점이다. 미국은 미국·우크라이나·러시아가 함께 동등한 지분을 보유해 운영할 것을 원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개입해선 안된다는 입장이다.
결국 서방이 그간의 이견을 어느 정도 좁히면서 푸틴에게 공을 넘기는 형국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의 전직 외교관 대니얼 프리드는 NYT에 “미국이 종전안에 더 깊이 관여할수록 푸틴이 그간 구사했던 책임 회피와 시간 끌기 전략을 계속하기는 더 어려워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