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달 초 베네수엘라 해안의 한 항만 시설을 드론으로 타격한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영토 내 표적을 직접 공격한 첫 사례로, 이번 지상 작전으로 양국 간 긴장이 한층 고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CNN은 29일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CIA가 이달 초 베네수엘라 연안의 외딴 부두를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영토 내부 표적을 직접 공격한 첫 사례로 알려졌다”고 했다. 미 정부는 해당 시설이 베네수엘라 범죄 조직 ‘트렌 데 아라과(Tren de Aragua)’가 마약을 보관하고 선박으로 옮겨 실어 해외로 유통하는 거점으로 활용돼 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격 당시 현장에 사람은 없어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 명의 소식통은 미 특수작전부대가 정보 지원 등을 제공했다고 전했으나, 미 특수작전사령부는 “우리는 정보 지원을 비롯해 이번 작전을 지원하지 않았다”며 이를 부인했다. CIA 역시 이 내용에 대한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소식통 중 한 명은 이번 작전으로 시설과 선박이 파괴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마약 밀수에 사용되는 항만이 다수 존재하는 점을 고려하면 상징적 의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베네수엘라 내부에서도 즉각적인 주목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드론 타격은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좌파 독재 정권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온 가운데 이뤄졌다. 마약 문제를 미국의 국가 안보 문제로 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는 마약과의 싸움을 사실상의 ‘전쟁’으로 규정하며 군사적 대응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해 왔다.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미 해군 ‘제럴드 포드함’ 전단이 지난달 베네수엘라 북쪽 해상인 카리브해에 진입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전쟁부)는 지난 9월부터 카리브해와 동태평양 등 중남미 연안 해역에서 ‘마약 운반선’이라고 못박은 선박들을 잇따라 격침해 왔다. 베네수엘라를 오가는 유조선도 제재 대상이라며 나포해왔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최근 연설에서 마약 밀매 조직을 테러 조직 알카에다에 비유하며, ‘테러와의 전쟁’과 같은 수준의 정밀 타격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26일 공개된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중남미발 마약 밀수를 차단하기 위한 미군 작전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선박들이 출발하는 큰 시설을 이틀 전에 제거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국가명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베네수엘라의 지상 목표물을 대상으로 공격이 단행됐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됐다.
또 지난 12일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남미 지역 마약 카르텔을 겨냥한 지상 타격에 착수하겠다고 밝히며 이 같은 공격이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반드시 (대상이) 베네수엘라일 필요는 없다”며 “우리 나라로 마약을 들여오는 사람들 모두가 표적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시절부터 마두로까지 숱한 부정선거 논란 끝에 30년 가까이 좌파 정권을 유지하며 중국·러시아와 전략적 밀착 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중남미 반미(反美) 세력의 최전선 역할을 해왔다. 이런 구조 때문에 미국은 베네수엘라 문제를 단순한 마약·지역 갈등이 아니라 중국 영향력 축출의 핵심 고리로도 보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번 공습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마두로는 최근 각종 연말 행사에 참석하며 지지자들과 어울리고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공개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압박 작전이 중대한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