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라 또렷하게 말하세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달 초 백악관 내각 회의에서 미리 성탄절 축하 메시지를 건넨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의 얘기를 듣고 이같이 밝혔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는 액면 그 자체로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는 문구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多)민족·다문화 국가인 미국에서 쓰기에는 ‘기독교 편향적’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연말 연휴 잘 보내라는 뜻의 ‘해피 홀리데이스(Happy Holidays)’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이 역시도 진보 진영이 주도한 워크(woke·깨어 있음) 문화의 잔재라 보고 의도적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축하 문구를 앞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한 성탄절 축하 성명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그분이 백성과 가까이하려는 소망이 완벽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며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란 선물에 기뻐하고 그리스도 은혜가 이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계속해서 쏟아져 내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미국은 내년 건국 250년을 맞는데, 트럼프는 “지난 250년 동안 신앙, 가족, 자유 원칙은 우리 삶의 방식의 중심에 자리해 왔다”며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든 근본적 가치를 수호하는 데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아래 한 나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취임 후 대통령 직속 종교 자유 위원회, 백악관 신앙 사무국 등을 설치했고 반(反) 기독교 차별 근절을 위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재집권 이후 처음 맞은 이번 성탄절을 앞두고 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여러 차례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메시지는 ‘메리 크리스마스’ 두 단어로 간단명료했고, 트럼프와 멜라니아 여사의 사진을 주로 활용했다. 성탄 전야(前夜)인 24일에는 “우리나라를 파괴하려고 온갖 짓을 다 하지만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는 급진 좌파 쓰레기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축하를 보낸다)” “신이 미국을 축복하기를 바란다”며 자신의 경제·사회 분야 성과를 열거했다. 트럼프는 1기 때부터 “‘메리 크리스마스’ 표현을 되찾아야 한다” “우리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 문구에 대한 공격에 맞선 싸움을 지휘해 자랑스럽다”고 했었다.
이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숀 더피 교통장관 등 대부분 내각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루비오는 한발 더 나아가서 “크리스마스의 기쁨 가득한 메시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영생의 소망”이라며 “모두에게 희망과 평화가 가득한 축복받은 연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가 성탄절을 축하하며 ‘해피 홀리데이’란 표현을 사용한 반면 중동의 에미레이트 항공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한 것을 꼬집었다. 머스크의 스타링크 서비스가 에어 프랑스와 기내 와이파이 제공을 위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을 한 것이 주목을 받았다. 머스크를 비롯한 트럼프 주변 인사들은 유럽이 서방의 가치 수호를 제대로 하지 못해 ‘문명 위기’에 처해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렇게 달라진 분위기에 트럼프를 추종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은 “나라를 되찾았다”며 효능감에 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 계열 인사들의 성탄절 축하 메시지는 미묘하게 달랐는데 조 바이든 전 대통령, 2028년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등은 ‘메리 크리스마스’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뒤에 ‘해피 홀리데이스’라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여기에는 민주당 지지자 구성이 공화당에 비해 종교·문화적으로 더 다양하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