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열린 성탄 전야 만찬에 참석해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 공관에 근무하고 있는 ‘경력 대사’ 30여 명을 소환하기로 한 것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사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고 미국의 경우 꽤 오랜 기간 주요국에 측근·가족, 후원자 같은 특임 공관장을 보내는 것을 선호해왔다. 그런데 이미 주요국 대사 임명이 1차적으로 끝난 상황에서 직업 외교관들까지 추가로 불러들이기로 하면서 “그에 따른 외교 공백을 중국·러시아가 재빨리 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외교관협회(AFSA)는 100개 이상의 공관장 자리가 공석(空席)인 것으로 보고 있다.

‘경력 대사(career ambassador)’는 경험과 전문성을 인정받은 직업 외교관에게 부여하는 최고위 계급이다. 외교관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경우 오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랐다고 봐도 무리가 아닌데,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담당 차관보와 필리핀·콜롬비아 대사 등을 지낸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경력 대사를 지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내리꽂는’ 특임 공관장과 비교하면 정치색이 덜하지만, 트럼프가 이번에 직업 외교관 출신들까지 대거 소환하기로 하면서 ‘외교관이 되고도 대사 한 번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 도래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트럼프는 그리스 대사에 자신의 장남과 연인 관계였던 폭스뉴스 방송인 출신 킴벌리 길포일을 보냈다.

상원 의원들은 이번 소환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며 “고위 지도부가 부재한 100여 개 대사관이 새로운 대사를 기다리는 동안, 경쟁국들은 우리가 방치한 그 나라의 지도자들과 정기적인 교류를 할 것이다. 적대국들이 영향력을 확대해 미국의 이익을 제한하고, 심지어 훼손할 수도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국무부가 이번 교체를 두고 “인사는 대통령의 권한이고 표준 절차에 따라 이뤄졌다”고 했지만, AFSA는 교체 대상 대사들에 전화로 통보만 이뤄졌고 어떤 설명도 제공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상 경력 외교관들은 이런 식으로 소환되지 않는데 투명성이 부족하고, 오랜 관행에 극명히 어긋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외 문제 개입을 꺼리고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미국 우선주의’ 어젠다를 실행하려는 트럼프가 국무부에 갖고 있는 뿌리 깊은 편견도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재집권 후 연방 구조조정에 드라이브를 걸었는데, 국무부에서 1300명 이상이 해고되고 대외 원조 프로그램이 대거 삭감되는 등 가장 큰 유탄을 맞았다. 또 직업 외교관 출신을 대거 해고하고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이념을 신봉하는 비(非)외교관 인사들을 주요 직위에 임명했는데, 이달 초 발표된 외교·안보·군사 분야 최상위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에 이들이 추구하려는 바가 잘 구현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