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안보 수장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23일 ‘쿠팡 사태’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역 관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한국이 미국 기술 기업들을 겨냥하며 트럼프의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쿠팡의 3370만명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국내에서 범정부적인 차원의 대응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런 분위기와 달리 미 조야(朝野)에선 이번 사안을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부당한 규제’로 보는 시각도 있어 외교·무역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기 위한 통상·경쟁 당국 차원의 사전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전자 상거래 사업을 영위하는 쿠팡은 매출 대부분이 한국에서 발생하지만, 델라웨어주(州)에 등록된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법인인 ‘쿠팡 INC’가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들고 있는 사실상의 미국 회사다. 트럼프를 비롯한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은 유럽연합(EU) 경쟁 당국 등이 X(옛 트위터), 구글, 아마존 같은 자국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고 천문학적인 벌금을 매기는 것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왔는데,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KFTC)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네러티브를 이식하려는 광범위한 로비 활동이 이뤄졌다. 한미가 지난달 발표한 팩트시트(fact sheet·설명 자료)에 명시된 “망 사용료, 온라인 플랫폼 규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의 차별과 불필요한 장벽…” 등은 빅테크 기업들이 자국 정부에 오랜 기간 해결을 요구해 온 ‘민원’들이기도 하다.

해럴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가 지난 17일 국회 과방위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뉴스1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이 최근 쿠팡에 대해 “영업정지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밝힌 가운데, 오브라이언은 이날 공정위를 겨냥해 “국회가 쿠팡을 공격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향후 공정위의 차별적 조치와 미국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규제 장벽을 구축하는 발판이 될 것”이라며 “미국 기업의 공정한 대우를 보장하고 해당 분야에서 점점 더 커지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맞서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강력하고 일관된 대응이 필수”라고 했다. 대럴 이사 공화당 의원은 지난 16일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 기업들에 대한 한국 국회의 괴롭힘이 심각한 외교·경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매체로 분류되는 온라인 매체 ‘브레이트바트 뉴스’는 지난 17일 국회 청문회 때 여야 의원들이 해럴드 로저스 쿠팡 임시 대표를 상대로 “개인적인 모욕을 퍼부었다”고 보도했다.

오브라이언은 지난달 16일에는 한미 팩트시트와 관련해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공격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의 역사를 바로잡을 필요성을 한국 관료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여기에는 근거 없는 형사 고발도 포함된다. 한국이 미국 기업을 대하는 방식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고 했다. 영장이 없어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임의 제출’ 방식, 공정위의 공격적 현장 조사와 낮은 조사 개시 기준 등에 관한 미 기업의 불만이 응축돼 있다. 무역 수장인 무역대표부(USTR)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도 워싱턴 DC의 대형 로펌 변호사 시절부터 한국의 경쟁 당국이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대우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온라인플랫폼법 관련 ‘중국 기업에만 좋은 일을 해줄 것’이란 문제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리어가 미국 측 대표로 참석하는 연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공동위원회가 이달 중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취소됐는데, 이와 관련 “디지털 규제에 대한 양국 간 견해차가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우리 정부는 취소가 아닌 연기고, 내년 초 공동위를 열기 위해 ‘건설적인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