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사악한 도둑이고, 그놈은 우리 모두를 쫓아다니지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남은 시간이 더 부족합니다.”
플로리다대 총장을 지낸 벤 세스(53) 전 공화당 상원의원이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23일 지난주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은 사실을 알리며 “이제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다”고 했다. 2014~2023년 네브레스카주(州)를 지역구로 하는 상원의원을 지낸 세스는 현역에 있을 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시도를 주도하고, 1·6 의회 습격 사태 책임을 앞장서서 물었던 공화당 내 대표적인 반(反)트럼프 인사로 분류됐다. 트럼프가 다시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2년 전 돌연 상원의원직도 던졌지만, 이날 그의 투병 소식이 전해지자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 앞다투어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세스는 이날 자신의 X(옛 트위터)에서 “이 글을 쓰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췌장암은 정말 끔찍한 병이고 나는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상태였다”며 “원하는 만큼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이 개성 넘치는 가족의 남편이자 아빠로서 더욱 힘들다”고 했다. 세스는 “낙관주의는 훌륭하고 절대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딸에게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주지 못한다고 말하거나 부모님께 아들을 (땅에) 묻어야 할 거라고 말씀드릴 때 낙관주의는 인생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췌장암은 특성상 조기 진단이 어렵고 초기 증상도 미미한데, 국립암연구소(NCI)는 췌장암 진단을 받은 환자의 약 13%만이 5년 이상 생존하는 가장 치명적인 암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슬픈 소식(sad news)”이라며 세스의 투병 사실을 보도했다. 세스가 플로리다대 총장으로 있던 지난해 여름 돌연 배우자의 건강 문제를 사유로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1년 반이 지나 건강에 관한 암울한 소식을 접한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 고백했기 때문이다. 세스는 “지난 1년 동안 공직 생활에서 잠시 물러나 새로운 가족의 리듬을 만들어 가면서 (배우자인) 멜리사와 더욱 가까워졌다”고 했고, 세 자녀의 성취를 열거했다. 그러면서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은 다르고, 죽어과는 과정은 여전히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며 “우리 집에서는 (내가 곧 죽을 것이란) 사형수 유머를 열심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세스는 현역 의원 시절 1·6 의회 사태가 벌어지자 트럼프를 향해 ‘망가진 사람(broken man)’이라고까지 표현하며 매가와 각을 세웠던 인물이고 한때 공화당 탈당까지 고려했다. 트럼프도 기회가 될 때마다 세스를 향해 “가장 무능하다” “라이노(RINO·이름만 공화당원)”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날 그의 투병 사실에 J D 밴스 부통령부터 의회 1인자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매가 성향 인플루언서 베니 존슨·메건 켈리, 정보효율부(DOGE) 수장을 지낸 비벡 라마스와미 등이 잇따라 “당신과 가족의 축복을 빈다” “우리 가족은 당신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고 위로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미국보수연합(ACU)의 맷 슐랩 의장은 “세스는 정치인으로는 형편 없지만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며 “결국 그는 (암과의 싸움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소속 정당에 관계 없이 민주당에서도 응원의 메시지가 답지했는데, 한국계 앤디 김 상원의원은 “이 감동적인 성명서를 한 글자도 빠짐없이 두 번이나 읽었다”며 “진솔하고 사려 깊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가장 힘든 순간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일깨워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민주당 잠룡인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 벤은 우리에게 빛과 은혜를 일깨워주는 길을 택했다”며 “이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족분들께 사랑을 전하며 계속 ‘좋은 싸움(good fight)’을 이어나가달라”고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잠시 시간을 내어 이 가슴 아픈 글을 읽어달라”며 “삶의 연약함을 가슴 아프게 일깨워줬다. 세스는 용감하고 정직하며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