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스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 /조선일보DB

지난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국방수권법(NDAA)에 ‘로이스 윌리엄스에게 한국 전쟁에서 보여준 용기 있는 행동에 대한 명예 훈장(Medal of Honor) 수여를 승인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100세인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은 6·25 전쟁에 나가 소련 미그기 4대를 격추시키는 전설적인 무공(武功)을 세웠지만 이게 오랜 기간 비밀에 부쳐져 최고 무공 훈장을 받지 못한 비운의 노병(老兵)이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트럼프가 지체 없이 훈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기고가 실렸는데, 윌리엄스가 생전에 영예를 누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윌리엄스는 형과 함께 형제가 해군 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했다. 1952년 11월 적(敵) 시설물 폭격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투기 F9F 팬서를 몰고 함경북도 회령 상공으로 날아갔는데, 소련군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기지에서 당시 최신식 전투기였던 미그-15 7대를 띄웠다. 윌리엄스는 아군 전투기들이 연료 이상 등으로 귀환한 가운데 상공에서 적기들에 홀로 둘러싸였는데, 약 35분 동안 벌어진 공중전에서 미그기 4대를 격추했다. 귀환한 윌리엄스의 전투기에는 구멍이 263곳 뚫렸고, 60cm 흠집까지 났지만 그가 입은 상처는 격렬한 움직임으로 전투복이 쏠리면서 목 피부가 벗겨진 정도였다.

로이스 윌리엄스 미 해군 예비역 대령이 해군 부대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사진. 그가 조종한 해군 전투기 모함인 오리스커니함은 6·25와 베트남 전쟁 현장 등에 배치됐다. /페이스북

하지만 이런 활약상은 소련을 자극할 경우 전세가 확전될 수 있다는 미 정보 당국 판단에 따라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윌리엄스에게도 함구령이 내려졌는데, 그가 격추한 미그기 숫자는 ‘1기’로 축소됐고 이 전공으로 은성무공훈장을 받는 데 그쳤다. 윌리엄스는 이후 30년 동안 해군 파일럿으로 근무하면서 베트남전에도 참전하는 등 220차례 출격해 1984년 퇴역했다. 그의 활약상은 2002년 당시 출격 기록이 담긴 문서가 기밀 해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명예 훈장은 연방 정부가 군인에게 수여할 수 있는 최상위 훈장인데, 올해 NDAA에 윌리엄스에 한해 수훈(受勳) 시효(사건 발생 후 5년 이내)를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이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날 WSJ에 칼럼을 기고한 케이트 오델은 “올해 100세인 로이스 윌리엄스가 명예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대통령이 지체 없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윌리엄스는 지난 2023년 1월 미 해군십자훈장을 받았는데, 할리우드 영화 ‘탑건’에서 파일럿으로 열연한 배우 톰 크루즈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수훈을 직접 축하하기도 했다. 같은 해 4월에는 미국을 국빈(國賓) 방문한 윤석열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태극 무공훈장을 받았다. 당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당시 공산주의 세력이 악한 존재라 생각했고, 그들의 진출을 막고 싶었다”며 “한미 동맹이 70년을 맞아 그간 여러 성과를 이뤘지만,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사우스다코다주(州)에 살고 있는 윌리엄스는 101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주변 인사들은 현지 언론에 “그는 정신이 매우 맑고, 워싱턴 DC의 시상식에 참석할 능력도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해군 대령에게 무공훈장을 친수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