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무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둔 19일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연말 기자회견을 가졌다. 올해 1월 상원에서 보기 드물게 ’99 대 0′ 만장일치로 인준을 받고 취임한 루비오는 이날 약 2시간 동안 50명의 기자로부터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쿠바계 이민자 집안 출신인 그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세계 도처의 복잡다단한 현안에 대해서도 밝았다. 답변 중간중간 정치인 출신 특유의 유머 감각도 발휘해 가며 2시간 넘는 기자회견이 지루할 틈이 없게 만들었다. 토미 피곳 부대변인은 “루비오는 역대 국무장관 중 가장 긴 기자회견을 했다”며 “트럼프 정부는 역사상 가장 투명한 행정부”라고 했다.

루비오는 이날 회견장을 가득 메운 내·외신 앞에서 “가능한 많은 질문에 답변하겠다”며 “영어로 답변이 가능하고, 스페인어로 질문하면 스페인어로 답변한 뒤 그 답변을 영어로도 다시 설명하겠다”고 했다. 이에 상당수 기자가 스페인어로 질문해 통역이 이뤄졌는데, 루비오는 “어떤 질문은 스페인어로 답할 때 더 멋지게 들린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 들어 국무부에선 대규모 예산·인원 구조조정이 있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하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기조에 맞춰 일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루비오는 “트럼프가 당선된 이유 중 하나는 국민 사이에서 우리 외교 정책이 완전히 재조정 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라며 “세상은 변했고 우리 외교의 제도, 정책, 전제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바탕으로 구축됐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재검토해야 했다”고 밝혔다.

루비오는 모두 발언을 마친 뒤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갈 것” “조급해하거나 흥분하지 말라”며 50명이 넘는 기자 모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외교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루비오는 상원의원 시절 자유·인권 등을 앞세우는 가치 외교를 강조했고, 미국이 세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노선에 가까웠다. 그는 트럼프 정부에 입성한 뒤 이런 원칙을 저버렸다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현재의 정치 환경에서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마코 루비오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말하는 것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왜 사람들은 우리 외교 정책이 우리 공화국과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며 “국민은 최고 사령관으로 트럼프를 선출했고, 구성원들의 임무는 대통령의 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국무부는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라고 설치된 곳이 아니다”라고 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19일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무부

루비오는 한 기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며 입을 떼자 중간에 끼어들어 “당신이 스스로를 푸틴이라 소개하는 줄 알았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이냐”라고 농담을 던져 현장에 있던 취재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국무부는 바이든 정부 시절 공식 문서 서체로 채택됐던 산세리프 글꼴 ‘캘리브리(Calibri)’ 사용을 중단하고 기존의 ‘타임스 뉴 로먼(Times New Roman)’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글자 획에 삐침이 있어야 더 품위 있고 전문적”이라는 루비오의 소신에 따른 조치였는데, 이는 상당수 언론으로부터 비판·조롱을 들었다. 한 기자가 “나는 캘리브리 서체로 질문하려고 했으나 더 이상 그 서체로 소통하지 않는 것 같다”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루비오는 “나는 ‘타임스 뉴 로만’으로 소통한다”며 재치 있게 이를 받은 뒤 자신의 답변을 이어갔다.

쿠바계 이민자 2세인 루비오는 2010년 상원에 입성해 플로리다주(州)에서 3선을 했다. 공화당 내 반(反)트럼프 인사였다가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뒤 2기 내각에 입성했는데, 미 외교의 거목(巨木)인 고(故) 헨리 키신저(1923~2023) 이후 반세기 만에 국무장관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자리를 겸직하고 있다. 53세인 그는 J D 밴스 부통령과 함께 트럼프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꼽히는데, 그는 최근 미 정가에서 화제가 된 베니티 페어 인터뷰에서 “밴스가 2028년 대선에 출마하면 그를 지지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후계 구도 관련 “밴스도 있고 루비오도 있다”며 분명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