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공연장 ‘존 F 케네디 센터’의 이름이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바뀔 전망이다. 이곳을 문화계 좌파의 본산으로 지목하고 직접 이사장에 취임해 ‘개혁’을 주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8일 소셜미디어에서 “케네디 센터의 존경받는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센터 명칭을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바꾸기로 의결했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각계 진보 진영을 상대로 벌이는 ‘문화 전쟁’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그간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케네디 센터를 ‘워크(woke·깨어 있음)’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상당했다.
지난 8월부터 개명 의지를 내비쳤던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사회) 구성원이 상당히 많은데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며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표결은 트럼프가 전화로 참여한 가운데 진행됐다. 만장일치였다는 백악관 설명과 달리 당연직 이사인 조이스 비티 민주당 하원의원은 “내가 우려를 표하고 질문을 하려 할 때마다 마이크가 음소거됐다”고 반발했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폭스뉴스에 “이것이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케네디의 손자 조 케네디 3세 하원의원은 “케네디 센터는 법에 따라 케네디의 이름을 딴 곳”이라며 “누가 뭐라 해도 링컨 기념관 이름을 바꿀 수 없듯 이곳의 이름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이사회 결정을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케네디 센터를 장악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해 왔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진을 해임하고 직접 이사장 자리에 올랐다.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을 비롯한 측근을 대거 이사진에 포함시켰다. 드래그 쇼(여장 남자 공연)를 비롯한 프로그램 내용도 문제 삼았다. 미국 최고 소프라노로 꼽히는 르네 플레밍이 여기에 반발해 예술고문직에서 물러났고, 브로드웨이 인기 뮤지컬 ‘해밀턴’은 공연을 취소했다.
트럼프는 지난 7일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인의 평생 공헌을 기리는 ‘케네디 센터 명예상’ 시상식에도 참석했다. 첫 임기 당시 수상자들이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4년 내내 시상식에 불참했던 트럼프가 전면에 나서자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정부가 워싱턴을 문화적으로 장악하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 장면”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워싱턴 DC의 상징적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이달 초 국무부 산하 미국평화연구소(USIP)가 ‘도널드 J 트럼프 평화연구소’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미 프로풋볼(NFL) 구단 워싱턴 커맨더스의 새 경기장에 트럼프 이름을 붙이려는 움직임도 물밑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공화당 의원은 워싱턴 DC의 관문인 덜레스 국제공항의 이름을 ‘도널드 트럼프 국제공항’으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