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공연장인 ‘존 F. 케네디 센터’의 이름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따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변경됐다. 1963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서거 이후 그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케네디 센터는 1971년 개관 이후 수도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거듭났다. 포토맥강을 끼고 위치해 있어 수도 풍경과도 잘 어우러지고 벚꽃 시즌에는 주변이 장관을 이룬다. 트럼프는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워싱턴 DC의 이곳을 자신이 타파해야 할 ‘워크(woke·깨어 있음) 문화’의 본산(本山) 중 하나라 보고 취임 후 측근을 꼳아 여러 개혁 작업을 벌였는데 마침내 이름까지 바뀌게 된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놀랍고 영광스럽다”고 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8일 X(옛 트위터)에서 “조금 전 세계 모든 분야의 가장 성공한 사람들의 일부로 구성된 케네디 센터의 크게 존경받는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센터 명칭을 ‘트럼프-케네디 센터’로 바꾸기로 의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소식을 알렸다. 이어 명칭이 변경된 이유에 대해 “트럼프가 지난 1년간 이 건물을 구하기 위해 이룬 믿기 어려운 업적 때문”이라며 “단지 재건축 관점에서뿐 아니라 재정적으로, 그리고 명성 측면에서 그렇다”고 했다. 트럼프는 취임 후 케네디 센터의 이사진을 물갈이하고 자신이 직접 이사장을 맡았다. 1기 때 독일 대사를 지낸 리처드 그레넬 특사, 백악관 인사국장을 지낸 세르지오 고르 인도 대사 등이 재단장 작업을 주도했다.
케네디는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진보에서 존경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와는 결이 크게 다른 유형의 지도자인데, 단순히 보수냐 진보냐를 넘어 성향이 180도 다른 두 대통령의 이름이 함께 붙어 있는 작명(作名)은 그동안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조합이다. 특히 이번 명칭 개정을 트럼프가 직접 뽑은 이사회가 의결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놓고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이사회가 명칭을 바꿀 권리가 없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레빗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케네디에게도 축하를 보낸다”며 “미래에 오랫동안 진정으로 훌륭한 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새로운 수준의 성공·위엄을 이룰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취임 후 주요 공연은 취소됐지만 기부금 모금액은 크게 증가했고, 각종 행사를 유치하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달 초에는 케네디 센터에서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2026 북중미 월드컵 조 추첨식이 열렸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세계 주요 분쟁을 중재한 공로를 인정받아 피파(FIFA·세계축구연맹)가 수여하는 초대 평화상을 받았다. 또 지난 7일 케네디 센터가 주관하는 명예상 수상식에는 트럼프가 직접 사회자로 나서기도 했는데,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정부가 워싱턴을 문화적으로 장악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AP는 지난 7월 공화당 일부 친(親)트럼프 하원의원이 센터 명칭을 ‘도널드 J. 트럼프 공연예술 센터’로 바꾸는 법안을 발의했을 때 케네디의 조카 마리아 슈라이버가 소셜미디어에 “미친 짓”이라 비난했다고 전했다. 반면 트럼프와 가까운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대통령이 센터 재단장, 활성화에 온 정성을 쏟았기 때문에 마땅히 이 영예를 안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