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은 11일 ’2026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을 찬성 77표, 반대 20표로 통과시켰다. 이번 법안에 담긴 미 국방 예산은 9010억 달러(약 1330조원) 규모로 정부 요청보다 80억 달러 늘어난 것이다. 미국은 한 해 국방 예산이 1000조원을 훌쩍 넘어 ‘천조국(千兆國)’으로 불린다. 상·하원이 통과시킨 이 법안에는 한국에 배치된 미군 병력을 현 수준인 2만8500명 미만으로 감축하는 데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미군의 확장억제(핵우산) 공약 재확인 등 한국과의 동맹을 강화한다”는 문구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명을 거치면 발효된다.
NDAA가 국방부 예산을 주한미군 감축에 사용하는 데 제약을 둔 조항은 바이든 정부에서 사라졌다가 트럼프 집권 2기 들어 5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 때도 NDAA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주한미군 2만8500명 내외를 유지한다는 문구가 있었지만 이를 예산 사용과 연계하지는 않았다. ‘미국 우선주의’ 구호를 내건 트럼프 정부가 동맹의 분담 분담을 강조하며 해외 주둔 미군 태세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가운데, 의회가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NYT)는 법안에 “국방장관이 유럽에 상주·배치된 병력을 7만6000명 미만으로 45일 이상 감축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고 했다.
NDAA에는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군에서 한국군이 지휘하는 사령부로 이양하는 것을 한미가 합의한 계획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완료하는 데 예산을 쓸 수 없다는 내용도 담겼다. 다만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하거나 한국, 일본, 유엔군 사령부에 군사적으로 기여한 국가를 포함한 동맹들과 적절히 협의했다는 점을 확인한 내용을 소관 상임위원회에 제출하면 60일 후 금지를 해제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고,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지난 10월 “훌륭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지지 의사를 밝혔다.
NDAA는 공화당 일부 의원의 반대를 넘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8억 달러 규모 추가 군사 원조, 이스라엘·대만 등 동맹 또는 전략적 파트너국에 대한 수백만 달러 추가 지원을 승인했다고 NYT는 전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확대되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응하기 위해 역내 동맹, 파트너국과의 군사 훈련에 대한 트럼프의 예산 요청을 전액 지원한다” “대만 협력 프로젝트에 10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했다. 지난 9월 베네수엘라 인근 공해에서 마약 밀매 의심 선박을 타격했을 당시 생존자를 2차 공격한 것을 두고 ‘전쟁 범죄’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공격에 대한 구체적인 명령과 편집되지 않은 공격 영상을 의회에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헤그세스의 출장 예산을 25% 삭감하도록 규정했다. 앞서 댄 케인 합참의장, 작전을 지휘한 프랭크 브래들리 해군 제독이 의회 브리핑을 했고 헤그세스는 전체 영상을 대중에는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다.
이밖에 군인 급여를 3.8% 인상하기로 했고 신형 잠수함, 전투기, 드론 등 국방 분야 지출에 대한 의회 내 초당적인 지지가 반영돼 있다. 1991년 걸프전, 2002년 이라크 전쟁 당시 대통령에게 사실상의 전쟁 선포권을 부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무력사용권(AUMF)’도 폐지했다. AUMF는 미국에 대한 적국(敵國)의 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될 때 대통령이 의회 동의를 생략하고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한 권한을 말한다. NDAA는 미 국방 예산을 책정하기 위해 1961년 제정된 법안으로 해마다 새로 편성한다. 그해 미국이 당면한 주요 국방 과제를 제시하고, 필요 예산을 책정해 상·하원이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다. 이번 NDAA는 올해 10월부터 내년 9월까지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