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NMAA)에서 열리고 있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기증품 ‘이건희 컬렉션’의 국외 순회전에 한 달 만에 1만5000명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보 7건, 보물 15건을 포함해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172건 297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북미 지역에서 열리는 한국미술 특별전 가운데 40여 년 만에 최대 규모로 열리는 것이다. 17일 강경화 주미 대사, 체이스 F. 로빈슨 NMAA 관장,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 대사, 의회·국무부 관계자 등 미 조야(朝野) 주요 인사 약 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지난달 초 개막 행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정지)으로 인해 한 차례 연기된 것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보물 -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Korean Treasures: Collected, Cherished, Shared)’로 명명(命名)됐다. 국내에선 ‘이건희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시명 등에 이를 부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각 공간의 주제를 설명하는 패널에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이건희 선대 회장,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 관장 등의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이 담긴 글귀를 하나씩 배치했다. “오래된 서예, 그림, 도자기들이 나의 조용한 스승이 됐다”(이병철 창업주)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보장하는 일”(이건희 선대 회장)이란 식이다. 전시실은 왕실 미술, 불교 미술, 한국 도자, 조선시대 회화 등 주제별로 나뉘어 있다. 여름 장마 후 인왕산 바위 표면의 축축함,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안개의 습한 느낌을 묘사한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秋聲賦圖)’와 함께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안전을 위해 이날까지 약 6주만 공개한다고 한다.
로빈슨 관장은 축사에서 “이번 전시는 우리 박물관의 파트너와 후원자들이 보여준 집중, 헌신, 투자의 결과물”이라며 “지난 10년 동안 북미 지역에서 열린 한국 미술품 전시 중 가장 중요한 행사다. 이 특별히 중요한 전시회에 참여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했다. NMAA에는 지난해 한국국제교류재단(KF) 지원으로 100년 역사상 처음 한국 담당 큐레이터가 신설됐고, 건물 앞마당에는 서도호 작가의 설치 작품인 ‘공인들(Public Figures)’이 5년 간 전시 되는 등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을 자랑하고 있다.
강 대사는 “한국인이 소중히 여기는 문화재가 외국에서 이처럼 인상적인 방식으로 선보이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며 “여기 모인 걸작들은 고 이건희 회장의 평생 열정을 반영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자랑스런 핵심적인 국가 소장품이 됐으며, 전 세계 관객과 공유돼 한국의 유구하고도 풍부한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감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워싱턴 DC의 다른 나라 외교관, 공무원, 지역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이 전시를 소개하며 꼭 직접 와서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며 “젊은 세대, 노년층 모두를 아우르는 글로벌 매력을 지닌 한류의 뿌리는 여기 전시된 역사와 예술적 전통에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 부임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신임장을 제정한 강 대사는 “11월 국경일 리셉션 이후 오늘이 가장 즐거운 자리”라고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20일 삼성 일가가 미술품 2만 3000점 이상을 국가에 기부한 것을 언급하며 “이건희 컬렉션은 일본 식민 지배, 6·25 전쟁으로 분열된 나라에서 연속적인 미술사적 서사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K팝 데몬 헌터스’ 열풍에 맞춰 대형 한국 미술전이 미국에 상륙했다”고 전했다. 이번 워싱턴 DC 전시는 내년 2월 1일까지 이어지고, 이후 시카고박물관(2026년 3월7일~7월5일)과 영국박물관(2026년 9월10일~2027년 1월10일)에서 순차적으로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각 지역과 개최 기관의 관람객 특성을 반영해 전시품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시 연출도 다르게 선보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