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4)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11일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상 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4)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11일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권씨 측과 ‘플리바게닝(유죄 협상 제도)’을 통해 징역 12년형을 선고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는데, 법원이 더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다.

이날 사건을 담당한 폴 엥겔마이어 판사는 이 사건을 “전대미문의 사기(epic fraud)”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번 사건 피해자들은 은퇴 자금이 사라지고, 거액의 돈을 날려 병원과 학교를 가지 못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면서 “검찰은 플리바게닝으로 12년형을 주장하지만 권씨에게 더 큰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검찰이 요청한 징역 12년형은 터무니없이 관대하고 변호인 측이 요청한 징역 5년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부당한 요청”이라고 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권씨를 바라보며 “당신의 범죄는 사람들에게 실제 400억달러에 달하는 돈의 손실을 초래했고, 이건 단순한 장부상의 손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돼 수감됐던 권씨는 미국으로 송환되기 전 17개월 수감 기간은 형량에서 감형 인정을 받았다.

2024년 몬테네그로에서 잡힌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 /EPA 연합뉴스

이날 손에는 수갑을, 양발에는 쇠사슬을 차고 재판에 참석한 권씨는 최후 진술에서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라면서 “모든 고통의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다”고 했다. 이어 “법원이 어떤 형량을 내리든 기꺼이 감수하겠다”면서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권씨가 말을 마치자 옆에 앉아 있던 변호인이 등을 몇 차례 두드렸다. 그는 이날 몬테네그로에서 송환됐던 지난 1월보다 바짝 마른 모습이었다. 권씨가 법정에 들어설 때 방청석 앞줄에 앉은 한국인으로 보이는 성인 남성 여럿이 박수를 쳤다.

권씨 측은 지난 8월 플리바게닝 이후 징역 5년형을 선고해달라고 한 바 있다. 이날 재판에서도 권씨 변호인이 “한국에서도 검찰이 수사 중이기 때문에 같은 사건으로 두 번 처벌받게 된다” “아내와 딸이 있는 한국에서 떨어져 미국 감옥에 가야 한다”면서 선처를 호소했지만 오히려 판사에게 지적만 받았다. 엥겔마이어는 “한국 검찰이 어떻게 수사하고 법원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내가 예측해서 재판할 수 없다”고 했다. 권씨는 현재 한국에서도 기소가 예정된 상황이다. 이번 플리바게닝 때 검찰은 권씨가 미국에서 형기의 절반을 복역한 뒤 해외 이송 신청을 하는 경우,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몬테네그로 교도소에서 나오는 모습./연합뉴스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권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가 2019년 발행한 가상 화폐 ‘테라’와 이를 보조하는 ‘루나’의 가격이 2022년 5월부터 폭락하며 전 세계 투자자에게 큰 피해를 입힌 사건이다. 권씨는 ‘테라’ 가격이 미 달러와 안정적으로 연동된다고 주장했지만 거짓으로 밝혀졌다. 미 검찰은 2023년 권씨를 ‘자금 세탁’ 등 8가지 혐의(이후에 한 가지 추가해 총 9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가상 화폐 ‘테라’와 관련한 사기로 400억달러(약 58조원) 이상의 투자 손실을 초래했다”며 “권씨는 최고 130년형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수사망을 피해 몬테네그로로 도망갔지만 지난해 12월 31일 미국 사법 당국에 인계돼 재판을 받아 왔다. 권씨가 받은 15년형은 다른 월가의 사기 사건에 비해 형량이 높지 않은 편이다. 2024년 11월 월가 투자금 14조원을 날린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설립자 빌 황(황성국)이 징역 18년 형을 받고, 그에 앞선 3월엔 고객 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가상 화폐 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