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랜다우 미 국무부 부장관이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해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이 자유주의 동맹인 유럽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어 미국 외교·안보의 중심축이 근본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미 고위 당국자들은 계속해서 유럽을 향해 “미국의 안보를 궁극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며 연일 맹폭을 퍼붓고 있다. 크리스토퍼 랜다우 국무부 부장관은 6일 “선출되지 않은 비민주적인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안보를 적극적으로 훼손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제 (미국을 갖고) 장난치는 시간은 끝났다”고 했다. 한 세기 가까이 전후 자유주의 질서를 떠받드는 중심축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랜다우는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 회의에 직속상관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대신 참석했다. 전쟁 5년 차에 접어드는 우크라이나가 트럼프 정부의 회의 속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든 가운데, 루비오의 불참은 그 자체로 유럽에 주는 메시지라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가운데 5일 공개된 NSS에서는 북한·러시아 등 권위주의 정권에 관해서는 서술을 거의 하지 않은 것과 달리 유럽에 대해 “과도하게 규제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이민으로 인해 문명적 소멸을 겪고 있다” “(유럽 정치와 정책이 현 상황을 유지하면) 유럽 대륙은 20년 내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신랄한 비판을 했다. “현재 유럽의 가치가 미국이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유럽에 충격을 던진 J D 밴스 부통령의 지난 2월 뮌헨안보포럼(MSC) 연설에 담겼던 문제 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랜다우는 “장관급 회의에서 강하게 느낀 것은 미국이 오랜 기간 나토와 EU 관계의 명백한 불일치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두 기구에 속한 국가들은 거의 동일한데 이들은 나토 모자를 쓸 때는 대서양 협력이 상호 안보의 초석이라 주장하면서 EU 모자를 쓸 때는 검열, 기후 광신주의, 개방된 국경, 국가의 주권 경시, 다자(多者) 거버넌스 및 과세 추진, 공산주의 쿠바 지원 등 미국의 이익·안보에 반하는 온갖 의제들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런 모순은 지속될 수 없다”며 “유럽의 위대한 국가들은 그들이 우리가 물려받은 서구 문명을 보호하는 동반자인지 아닌지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 EU의 선출되지 않은, 비민주적이고 대표성 없는 브뤼셀 관료들이 문명 자살 정책을 추진하도록 나라와는 파트너인 척을 할 수 없다”고 했다.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지난 2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뮌헨안보포럼(MSC)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현재 유럽의 가치가 미국이 방어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그의 연설은 유럽 전역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X(옛 트위터)에 1억2000만 유로(약 2050억원)의 벌금을 부과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자국 기업에 대한 디지털 규제에 부정적인 트럼프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을 또 한 번 들끓게 하고 있다. 루비오는 “EU가 부과한 벌금은 X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의 기술 플랫폼과 우리 국민을 공격하는 것”이라며 “(유럽이) 미국의 온라인 활동을 검열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랜다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럽 국가가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들 국가 다수가 에너지 운명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금을 능가한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