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르완다와 민주콩고공화국(DRC)의 평화협정 체결식에 참석해 있다. /AFP 연합뉴스

백악관이 5일 공개한 외교·안보 분야 최상위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은 미국 본토와 앞마당이라 할 수 있는 서반구(아메리카 대륙 전체) 방어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안보·번영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서반구에서 우월한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전세계 주둔 미군의 태세를 조정할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을 하겠다며 국제법 위반 논란에도 마약 운반 의심 선박을 잇따라 타격하고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고조하고 있는 가운데, 이게 일시적 현상이 아님을 분명히 한 것이다. 1823년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의 간섭 배제, 미 영향력 강화를 강조한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의 ‘먼로 독트린’에도 비견된다.

NSS는 아메리카 대륙에서의 패권 확보를 위한 ‘트럼프 코롤러리(Trump Corollary·필연적인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서반구에 대한 우리의 목표는 ‘참여와 확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며 “서반구의 기존 우방들을 참여시켜 이주 통제, 마약 유통 저지, 육·해상 안정 및 안보 강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관세와 상호무역 협정을 강력한 ‘도구’로 활용해 역내 경제 발전을 꾀하고, 전략적 요충지와 자원을 파악해 역내 주요 공급망을 강화함으로써 대외 의존도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특히 “서반구 내 긴급한 위협을 다루기 위한 전 세계 미군 주둔을 재조정한다” “최근 수십 또는 몇 년 사이 미 국가 안보에 대한 상대적 중요도가 감소한 지역에서는 (미군을) 축소한다”며 미군 재배치 가능성도 시사했다. 해상 교통로 통제, 불법 이주·마약 밀반입 저지, 범죄 조직 소탕 등에 미군 자원이 투사될 수 있다.

폴리티코는 “NSS는 트럼프가 2기에서 취한 많은 조치, 일부 참모들의 우선순위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는 서반구 지역에 미국의 군사력을 대폭 증강 배치하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줄이기 위해 다수 조처를 하며, 미국 내 산업 기반을 강화하고 유럽을 포함한 ‘서구 정체성’을 촉진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했다. 이어 “이런 약속은 오랫동안 미국의 관심 부족에 좌절해 온 많은 라틴 아메리카 정부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면서도 “이런 약속이 무역 파트너들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고집하는 트럼프의 입장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고 했다. 트럼프는 역대 미 대통령과는 달리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등 남미 지역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거침없이 관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NSS의 특징은 전통의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 관한 서술이 부정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질서를 떠받들 수 없다”며 각국이 지역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로 언급했는데, 트럼프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을 압박해 방위비 부담 확대(국내 총생산의 5%)를 끌어낸 것을 일종의 ‘모델’로 언급했다. 특히 유럽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트럼프 정부는 소수 정부에 안주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비현실적 기대를 품고 있는 유럽 관료들과 대립하고 있다”며 “이들 중 다수는 반대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유린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 등은 그간 공개 석상에서 유럽 일부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불법 이민자에 휘둘리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