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 옐로스톤 등 미국의 유명 국립공원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의 부담이 한층 커질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립공원 연간 이용권과 인기 국립공원 입장권 가격을 영주권자가 아닌 외국인 여행객에게 훨씬 높게 책정해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미국 내무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미국 우선 입장료 정책’을 내년부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재집권 뒤 관세·교육·취업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미국 우선’을 외치며 외국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도입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관광에서까지 외국인을 겨냥한 ‘장벽’을 세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1년 동안 무제한으로 국립공원을 이용할 수 있는 연간 이용권 ‘아름다운 미국’ 패스는 내년부터 외국인 여행객에 한해 250달러(약 36만7000원)를 받는다. 미국인·영주권자(80달러)보다 세 배 이상 비싸진 것이다. 연간 패스는 한 장으로 차량 한 대에 탑승한 인원(보통 성인 4명)이 모두 입장할 수 있다.
연간 이용권 없이 개별로 공원을 방문할 경우에도 외국인 부담은 커진다. 433곳의 국립공원 중 외국인이 많이 찾는 11곳에서 외국인 1인당 100달러(약 14만6000원)를 더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할증’인 셈이다. 이 정책이 적용되는 공원 목록에는 한국인도 많이 가는 그랜드캐니언·옐로스톤·요세미티·로키마운틴·에버글레이즈 등 대표 관광지들이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2명이 연간 패스 없이 그랜드캐니언을 차 한 대로 갈 경우, 지금은 기본 입장료 35달러만 내면 되지만 내년부터는 235달러가 든다는 얘기다.
미국의 국립공원은 해마다 특정 날짜를 지정해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은 내년부터 이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내년 무료 입장일에는 대통령의 날·메모리얼 데이·재향군인의 날 등과 함께 트럼프의 생일 겸 성조기 국기 채택일(6월 14일)이 포함돼 있다.
더그 버검 내무장관은 “이미 국립공원 운영비를 지원해온 미국 납세자들은 부담 없이 국립공원에 입장하되, 외국 방문객들은 다음 세대를 위해 공원을 유지하도록 마땅한 몫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내무부는 트럼프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함께 들어간 새로운 연간 이용권 도안도 공개했다. 군인용의 경우 트럼프가 군인들에게 경례하는 사진이 포함된다.
미국은 근대 국립공원 제도의 근간을 세운 나라다. 1872년 옐로스톤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1916년에는 전담 연방 기관인 국립공원관리청(NPS)이 출범했다. 방문자 센터를 건립하고, 공원 순찰과 야생동물 보호 등을 도맡는 전담 직원(파크 레인저)을 두고 다양한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스템을 여러 나라가 본떴다. 미국 국립공원 433곳의 총면적은 8500만 에이커(약 344만㎢)로 한반도 면적의 15배와 맞먹는다. 지난해 연간 국립공원 방문객은 3억명에 달했다.
관광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더 많은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고 있다. 야생동물 사파리로 유명한 탄자니아와 르완다, 갈라파고스섬이 있는 에콰도르 등이 그런 경우다. 국립공원 인근 지역에서는 이번 조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마리포사 카운티 여행국의 조너선 패링턴 대표는 워싱턴포스트에 “요세미티 방문객 중 4분의 1이 외국인인데, 입장료 인상으로 이들의 방문이 끊겨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지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