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와 멜라니아 여사가 25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칠면조 사면식'에 참석해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추수감사절을 이틀 앞둔 25일 백악관에서 ‘칠면조 사면식’을 가졌다. 일부 칠면조가 도축돼 추수감사절 식탁에 오르지 않도록 ‘완전하고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대통령 사면권’을 행사하는 것이 백악관 나름의 관례인데, 이날 트럼프의 선언에 따라 지난 7월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서 부화한 52파운드(약 23.6kg)짜리 ‘고블’과 50파운드짜리 ‘와들’ 두 마리가 사면을 받았다. 이들은 칠면조 산업의 ‘홍보 대사’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 이 와중에도 트럼프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 전 연방 하원의장 등 자신의 정치적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블(Gobble)‘은 ‘게걸스럽게 먹다’는 뜻으로 칠면조가 내는 소리를 의미하고, 웨들(Waddle)‘은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트럼프는 이들 칠면조의 이름은 “‘척’과 ‘낸시’로 부를까 했다”며 “하지만 그들에 대해선 내가 절대 사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슈머는 민주당의 지도자격인 인물인데 트럼프는 연방 정부 셧다운(업무 기능 정지)을 거치는 과정에서 이를 ‘슈머 다운’이라 표현하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달 초 정계 은퇴를 선언한 펠로시는 여성 최초로 하원의장을 두 차례 지낸 거물인데, 트럼프와의 악연(惡緣)으로 유명하다. 트럼프는 펠로시의 은퇴 선언에 “악마 같은 여자” “기쁘다”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트럼프는 지난해 바이든이 사면한 칠면조인 ‘피치’와 ‘블로섬’의 사면이 무효가 됐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졸린 조 바이든이 사면에 오토펜(autopen·자동 서명기)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재집권한 뒤 설치된 역대 대통령 사진 역시 바이든의 경우 인물이 아니라 오토펜 그림이 들어가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고령의 바이든이 재임 기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이 짙다. 트럼프는 주방위군 배치 등을 놓고 자신과 갈등한 민주당 소속 J 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 브랜든 존슨 시카고 시장을 언급하며 “시장은 무능하고 주지사는 크고 뚱뚱한 게으름뱅이”라고 했다. 이어 “나도 몇 파운드 정도는 빼고 싶다”면서도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를 먹을 것이기 때문에 절대 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오른쪽)이 25일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1살짜리 아들 니코를 안고 칠면조 옆에 쪼그려 앉아 있다. /EPA 연합뉴스

칠면조가 추수감사절 식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 청교도들이 1621년 맞은 첫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잡아 나눠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칠면조는 북미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겨울을 앞두고 살이 오른 가을에 가장 맛이 좋아 추수감사절 요리로 적당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공표한 1863년 전후엔 미국에 칠면조가 최소 1000만 마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의 칠면조 사랑은 각별한데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인 벤저민 프랭클린은 “다른 새들의 먹이를 빼앗는 흰머리수리가 아니라 농장 도둑에게 용감하게 덤비는 칠면조가 우리의 국조(國鳥)가 돼야 한다”고 했다.